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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 임시완-변요한 가슴 뭉클했던 PT장면, 40분이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 본문

Drama

미생 임시완-변요한 가슴 뭉클했던 PT장면, 40분이 지루하지 않았던 이유


딘델라 2014. 10. 26. 08:20

미생의 PT장면을 가슴 뭉클하게 만든 건 두번의 반전이었다. 자신감 넘쳤던 한석률(변요한)은 첫 PT과제를 발표하며 큰 실수를 저지른다. 쉼 없이 쏘아대던 그의 탁월한 언변도 긴장감 앞에선 어쩔 수 없었다. 알고보니 한석률은 발표 울렁증 같은 게 있었다. 가장 중요한 순간 청심환이 없어서 말 한번 제대로 떼지 못하고 계속 실수를 했던 한석률! 이대로 PT가 망하는가 싶더니, 장그래가 대신 발표하겠다며 호기있게 나섰다.

 

 

대체로 주인공들은 천재적인 무엇이 있기 마련이다. 위기의 순간 가장 빛나는 존재감을 뽑내는 주인공들이 언제나 메인이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미생은 보기좋게 그런 공식을 깼다. 한석률의 화려한 수사와 언변은 쉽게 대체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장그래는 현장 경험이 턱 없이 부족해서 생각을 조리있게 전달하지 못했다. 발표를 지켜보던 중진들은 장그래의 부족함을 꼬집었고, 장그래는 한석률이 자신을 무시했던 이유만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결국 첫 과제는 장그래의 힘으론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그 순간 한석률이 화려하게 깨어났다. " 역시 현장이지 말입니다 " 온 가족이 현장에서 땀 흘렸던 블루칼라 출신이었던 한석률은 현장을 무시하던 풍토를 절실히 느끼고 살았기 때문에 강한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었다. 그가 인턴이 되자마자 현장만 누볐던 이유는 그런 아픔 때문이었다. '진정한 노동은 현장이다.' 그런 강한 자부심은 곧 가족에 대한 자부심이었다. 그때문에 그는 현장이란 소리에 울렁증을 단박에 날리며 다시 화려한 언변술사로 변신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익힌 풍부한 경험들은 그의 발표 안에 그대로 담겨 중진들을 매혹시켰다. 그는 사기꾼 폭탄이 아니라 3분만에 자신의 진가를 입증시킬 수 있었던 성자였다.

 

 

이처럼 위기가 기회가 되어 한석률은 첫 과제를 멋지게 성공시켰고, 장그래는 한계만 보여주었다. 장그래가 실패하는 건 어쩌면 당연하고도 현실적인 결과였다. 노력하는 보통 사람들의 매일을 치열하게 그리는 미생에선 극적인 과정도 현실적인 선택에서 출발했다. 그것이 미생이 특별한 이유고 그래서 장그래가 더욱 빛나는 것이었다. 그런 실패가 있었기 때문에 장그래의 성공은 더욱 극적으로 다가온다. 두번째 개인 과제에선 뭉클한 장그래의 반전을 그렸다.

 

 

'파트너에게 물건을 판다면 어떤 물건이고 이유가 무엇인가' 몸싸움까지 하며 서로에 대해 악감정만 남았던 두 사람! 파트너십이 깨진 상황에서 어떻게 물건을 팔 것인가? 고민을 요하는 과제였다. 장그래는 오과장의 훈수에서 깨달음을 얻어 팔 물건을 골랐다. 그것은 다름아닌 슬리퍼였다. 현장만이 진짜 가치있다고 여기는 한상률은 장그래에게 부족한 현장의 노하우를 팔겠다고 했다. 사지 않겠다 이유를 말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장그래는 고심끝에 한상률의 노트만 사겠다며 준비한 천들은 재치있게 거절했다. '안 돼면 다리라도 걸어 자빠뜨리는 쾌감이라도 선사하라' 오과장의 훈수대로 장그래는 한상률의 약점을 공략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함께 합격해서 물건을 판다면 천들을 사겠다는 제안까지 했다. 얍삽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창의적인 재치였다.

 

승부사 기질이 있는 장그래는 중진들의 마음을 서서히 사로잡았다. 그리고 장그래가 꺼내든 건 사무실에서 치열하게 일하며 닳고 닳아버린 오과장의 슬리퍼였다. 땀내가 가득한 슬리퍼는 사무실도 곧 중요한 현장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현장과 사무실은 유기적인 공동체고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결국 현장 일도 사무실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장그래는 바둑에서 배웠던 철학을 담아서 자신의 소신을 설파했다. 그의 말들은 모두의 가슴을 울렸다. 심지어 단단한 편견 속에서 마냥 사무직을 무시했던 한상률마저도 울렸다. 머리가 아닌 가슴을 울리는 일! 그것을 장그래가 해낸 것이다.

 

 

보통의 누군가가 치열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모든 곳이 곧 현장이리라. 이 단순하지만 깊은 진리를 장그래는 뛰어난 통찰력으로 포장했다. 장그래의 성장은 결코 26년을 헛되게 살아오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바둑판 안에서 상대의 수를 잃고 끝없이 싸웠다. 그 안에는 장그래는 남들이 볼 수 없는 세계를 배웠다. 뛰어난 집중력과 승부기질은 덤으로 얻어진 것이다. 그를 통해 장그래는 평범한 것을 특별하게 만드는 창의적인 안목을 얻었다. 바둑이란 세상에 빠져 철저히 혼자만의 싸움만 이어갔던 장그래! 그의 눈에 비친 사회는 모두가 바쁜 현장이다. 직원들의 작은 움직임 하나도 그에겐 신기한 모습들이었다. 사무직의 가치를 순수하게 온몸으로 채득한 장그래는 슬리퍼 하나에도 다양한 이야기를 담을 수 있었다.

 

자신의 진가를 창의적인 안목으로 증명했던 장그래는 결국 PT의 주인공이었다. 딱 그만큼 장그래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생생했던 능력치를 극적으로 담아냈던 PT장면은 이처럼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사실 PT장면은 기대하면서도 걱정이 앞섰던 게 사실이다. 장장 40분 동안 PT 장면을 내보낼 만큼 이날의 중심 소재는 PT였다. 그래서 제작진들이 PT장면에 40분을 할애하며 사실적 묘사를 했다고 예고했을 때 자칫 지루하면 어쩌나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런 우려는 보기좋게 날라갔다. 40분간 이어진 PT 장면 어디에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인턴들의 긴장감이 시청자에게 전해질 정도로 쫄깃한 연출력이 극의 재미를 더했다. 인턴의 능력치를 간파하기 위해 끝없이 질문을 던지던 중진들! 그것을 마치 중계하듯 지켜보며 상황 해석을 적절히 해주던 오과장! 경쟁자들의 시비가 엇갈릴 때마다 울고 웃던 인턴들! 그리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 벌어졌던 장그래와 한상률의 뭉클한 PT까지! 배우들의 자연스런 연기와 섬세하면서도 극적인 연출력이 몰입도를 높이며 40분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다. 특히나 임시완과 변요한의 연기를 정말 칭찬해주고 싶다. 긴 시간을 온전히 몰입하게 만드는 탁월한 연기력이 있었기에 PT장면을 더욱 흥미롭게 그릴 수 있었다. 둘다 아직은연기에선 신인이나 다름없는 위치다. 그럼에도 이들을 과감하게 기용한 제작진들의 안목이 정말 훌륭했다. 연기력 좋은 신인들이 더욱 설자리가 많아야 할 것이다. 다시금 느꼈다.

 

이처럼 미생은 참으로 잔잔하고 여백이 많은 드라마다. 그럼에도 미생은 한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만큼 몰입도가 매우 컸다. 웹툰을 드라마와 한다는 건 장면과 장면 사이에 상상력을 발휘해서 그림을 채워넣는 일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자칫 엉뚱한 장면으로 원작의 흐름을 훼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미생은 원작에 충실한 그림들을 매우 잔잔하게 담아내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것은 제작진들의 섬세한 연출력이 빛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몰입도 높았던 PT장면은 장그래가 입사를 하는 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장그래는 2년 계약직으로 다시 영업 3팀으로 돌아왔다. " 왜 또 너냐고? " 오과장의 변함없는 츤데레? 캐릭터가 빵터지며 본격적인 직장생활의 기대감을 더했다.  " 어떻게든 버텨라! 버틴다는 건 어떻게든 완생으로 나간다는 거니까.....우린 아직 다 미생이야! " 엔딩에서 오과장이 들려주었던 미생의 먹먹한 의미가 드라마 '미생'이 보여주고자 하는 주제일 것이다. 매회 감동적인 명대사를 쏟아내는 미생은 진정 월메이드 작품 같다. 앞으로도 지금의 완성도를 유지하며 끝까지 좋은 작품으로 남기를 바란다. 다음주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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