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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델라의 세상보기
응답하라 1988 사랑과 우정사이 박보검 류준열, 잔인한 삼각관계의 딜레마 본문
'응답하라 1988'가 지난 14회를 기점으로 시청률 15%를 돌파했다. 15회는 크리스마스에도 화제를 뿌리며 무려 16.3%까지 치솟았다고 하니 대단하다. 조심스레 시청률 20% 돌파를 점치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이번 응팔의 시청률 추세는 그저 놀랍다. 화제성과 흥행은 이미 공중파를 넘었으니 그 파급효과가 음원 돌풍과 출연자들의 CF러시로까지 번지면서 신드롬 수준이다. 그만큼 사람들은 간절하게 응팔이 전해주는 추억의 단편에 응답했다. 정이 넘치던 시절 우리네 이웃들과 골목 친구들의 정겨운 모습 그리고 진한 가족애까지! 너무 잊고 있어서 이젠 추억의 판타지가 된 아롯한 기억들이 사람들의 추억을 깨웠다. 세대를 뛰어넘어 사람들은 각박한 현실에 치여서 정을 그리워했다.
그런데 응팔 역시 전작들처럼 그 안에 여러 사랑들이 존재한다. 응팔이 차별점을 두고 가족과 이웃의 소소한 에피를 더 강조하고 있지만, 응답 시리즈의 골자엔 역시 러브라인을 빼놓을 수 없다. 응답이 청춘스타의 발굴의 장이 된 것도 이 러브라인이 큰 몫을 했다. 그래서 응팔엔 기대되는 젊은 배우들이 많이 캐스팅되었고, 이들의 잔잔한 러브라인도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선우(고경표)와 보라(류혜영)의 러브라인은 초반부터 탄탄하게 진행되었다. 아마 응팔 중 가장 탄탄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전개된 커플일 것이다. 연상연하 커플의 강력한 직진 사랑이 시선을 끌었고, 이들 사이의 유대감도 공감을 전했다. 이 커플의 백미는 바로 선우의 아픔을 위로하는 보라의 존재일 것이다. 선우가 보라에게 반하게 된 것도 아빠의 장례식에서 그 아픔을 보듬어준 보라의 든든함이었고, 택이 아빠와 선우 엄마가 점점 가까워지면서 느끼는 선우의 복잡한 감정을 위로하고 방향을 제시한 것도 결국 보라였다. 그만큼 선우에게 보라의 존재는 아빠 없는 빈자리를 대신한 선물 같은 연인이었다.
그리고 정봉이(안재홍)의 사랑도 흥미롭다. 덕후 캐릭터의 새 장을 연 정봉이는 매회 신스틸러다운 강력한 한방을 보여준다. 특히 덕선이 친구 미옥(이민지)와의 러브라인까지 범상치 않았으니. 확인 키스의 주인공이 되면서 최고의 로맨시스트로 등극했다. 한번 빠지면 온갖 정성을 들이는 취미생활처럼 사랑도 마찬가지였다. 러브레터 하나에도 그의 진심이 묻어났으니, 황금열쇠카드를 미옥이에겐 준 장면은 정말 설렜다. 게다가 이 커플의 백미는 바로 패러디의 향연에 있다. '늑대의 유혹' 우산씬 부터 '시크릿가든' 거품 키스까지! 유명한 로코 속 장면들을 패러디하며 감동 속 웃음을 뽑아냈다.
하지만 이들 커플보다 가장 흥미로운 건 어쩔 수 없이 아련한 삼각관계인 덕선(혜리), 정환(류준열), 최택(박보검)의 이야기가 아닌가 한다. 응답하면 빼놓을 수 없는 남편찾기가 바로 이들 속에 있다. 그러나 누가 남편인가는 중요치 않다. 어남류란 말까지 나오면서 누가봐도 정환이가 남편에 가장 근접한 후보니까 말이다. 사람들이 가장 기대하는 건 남편의 유무보다 이들의 삼각관계가 좀 더 촘촘하게 그려지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메인 러브라인이지만 가장 불친절한 진행 속도를 보이고 있어서 15회를 기점으로 답보 상태인 이들의 삼각관계에 시청자들이 뿔이 많이 난 것 같다. 분량마저 여타 러브라인에 비한다며 적으니, 팬들이 속이 타는 것도 이해는 된다.
그만큼 삼각관계는 참으로 감질나는 로맨스였다. 그리고 참으로 잔인한 딜레마를 안고 있다. 15회 주제 '사랑과 우정 사이'처럼...어릴적 친구가 이성으로 보일 때쯤. 서로가 훌쩍 자라 2차 성징을 하면서 그간의 우정도 달리 보이는 때가 온 것이다. 그런데 이 삼각관계에서 누구보다 아픈 첫사랑앓이를 하는 캐릭터는 정환이었다. 정환과 택이에 비한다면 아직 덕선이는 아이처럼 보일 때가 많다. 선우가 보라를 좋아한다고 엉엉 울 때나 아무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며 동룡이한테 넉두리를 할 때는 아직은 애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덕선이의 천진난만함이 아직은 미성숙하게 다가오니 사랑을 눈치채기엔 무뎠다. 그러니 정환이는 더 속이 탈 수 밖에.
그에 비해 택이와 정환이는 주변 상황상 일찍 어른이 된 캐릭터였다. 아직은 철이 없는 형 대신 부모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자란 정환이는 은근히 속정이 깊은 둘째아들이다. 그리고 택이는 일찍부터 바둑의 길로 들어서며 어른의 세계를 먼저 접했다. 덕선에겐 한없이 어린 동생처럼 느껴지지만 실은 누구보다 어른의 세계를 가장 잘 알고 진중하다. 그래서 이들의 사랑 또한 매우 조숙한 면이 느껴진다. 특히 정환이가 그랬다. 치기어린 모습도 없이 정환이는 택이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덕선이가 너무 좋지만, 택이가 덕선을 좋아한다니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리고 정환이는 다가오는 혜리의 마음도 어느 정도 눈치챘기에 더 마음이 아팠다. 이대로 덕선의 마음을 받아들이면 당장에 사랑은 이뤄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정 때문에 좀처럼 나설 수가 없다.
그 우정이란 다른 의미의 사랑이었다. 혜리를 좋아하는 만큼 택이 역시 소중했다. 그래서 택이를 미워할 수가 없었다. 12화에서 택이를 잠자리에 재워주며 한숨짓는 정환의 복잡한 얼굴이 그대로 그의 심정이었다. 사랑해서 미워할 수 없고 질투도 할 수 없고 버릴 수도 없는 존재. 표현을 안해도 누구보다 속이 깊고 진중한 정환에겐 참으로 선택하기 힘든 문제였다. 그러다 보니 자꾸만 마음을 억눌렀고, 덕선이를 챙기고 싶어도 좀처럼 용기를 내지 못했다. 우는 덕선이를 보고 간신히 용기를 냈을 때는 택이가 먼저 덕선이의 어깨를 기대고 있었다. 이도 저도 못하는 정환의 짠함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정말 속이 탔으니, 류준열의 번민에 찬 표정연기도 애타는 마음을 잘 표현했다.
그런 짠한 순간이 택이에게도 찾아왔다. 택이도 정환의 마음을 눈치채고 말았다. 15회 최고의 명장면은 바로 택이가 정환의 마음을 알고 표정이 굳어버리던 순간이었다. 동룡이와 나미춤을 추던 덕선이의 해맑은 모습에 넋 놓고 해벌쭉 웃던 택이! 사랑하는 사람을 볼 때는 눈빛부터 틀리다고 했던가? 선우의 말처럼 택이는 덕선이 바라기였다. 그런데 택이가 그 말을 떠올리던 순간 정환이의 눈빛을 보고 말았다. 자신과 똑같이 덕선이만 따라가는 정환이의 미소진 눈빛은 사랑에 빠진 얼굴이었다. 그것을 눈치챈 택이는 아련하게 정환을 무표정으로 바라봤다. 정환이 번민에 찼던 그 순간처럼 말이다. 우정의 시험대에 든 참으로 안타까운 찰나였다.
택이가 정환을 생각하는 마음도 컸다. 친구의 아버지를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불편도 감수할 만큼 말이다. 병원씬은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그래서 택이가 정환의 마음을 아는 장면도 참 안타까웠다. 우정을 앞에 둔 사랑이니 섣불리 장난처럼 꺼내보일 수도 없다. 서로의 눈치를 살피게 되면서 상처가 될까 고민도 할 것이다. 그러나 택이는 승부욕이 강하기에 분명 물러서진 않을 것이다. 허나 우정을 내팽게 칠 정도로 모질지도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덕선이가 정환이를 좋아한다면 마냥 불편한 삼각관계를 유지하지도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정환이도 택이도 안타까운 첫사랑의 성장통을 겪고 있다. 참으로 잔인하게도 이들은 우정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었다. 손꿉친구 덕선이가 여자로 보였고, 마음 한켠에 덕선이를 향한 사랑을 키웠지만 그것은 나만이 아니였다. 속을 다 꺼내보이던 친구 사이에 몰래 비밀을 간직하게 만든 잔인한 삼각관계! 풋풋한 성장통치고 정환과 택이가 고민해야 할 무게가 너무 크다. 그래서 정환과 택이를 보고 있으면 짠하다. 그리고 류준열과 박보검을 더 칭찬하고 싶다. 사랑표현을 할 수 있는 선우보라나 정봉이커플보다 이들의 운명은 가혹하고 안타깝다. 감정표현을 할 수 있는 수단도 극히 제한적이다. 오롯이 류준열과 박보검의 섬세한 표정연기가 애타는 속마음을 전할 뿐이다. 참 불친절한 감정선인데 그것을 좋은 연기로 표현해주고 있기에 배우들의 진가는 더 돋보였다.
결국 무딘 덕선이의 마음이 모든 열쇠일 것이다. 동룡이의 말처럼 누군가 자신을 사랑하길 기대하기 보단 자신의 마음이 결국 중요하니까. 응답 시리즈가 늘 그랬듯이 여주의 마음이 가는 쪽이 이뤄지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택이나 정환이의 우정도 잘 그려지기 바란다. 결국 잔인한 딜레마를 풀어갈 열쇠도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도 우정일 것이다. 이렇게 선택지도 답답한 상황에서 진도마저 루즈하니 시청자의 원성이 크지 않나 싶다. 지금까지 이들의 사랑이 예고 낚시 수준으로 담긴 건 아쉬움이 든다. 그러니 이젠 본격적인 이들의 성장통을 꺼내보일 타이밍도 되었다. 마음으로만 품었던 걸 하나씩 풀어내며 약간은 아프겠지만 성장해가는 주인공들의 모습도 절절히 보고싶다. 남은 회차에선 아껴둔 로맨스의 향방을 속시원히 풀어주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