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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안 특급 '박찬호'-일본행 선택 굳이 했어야 하나..- 본문

스포츠

코리안 특급 '박찬호'-일본행 선택 굳이 했어야 하나..-


딘델라 2010. 12. 21. 13:53

코리안 특급 박찬호가 이제 미국 무대를 뒤로 하고 일본 오릭스 입단을 어제 공식 발표 했습니다. 굳이 일본으로 갔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국내 복귀를 학수고대 하던 팬들도 많았는데 말이죠 지금 포털에서는 일본 진출 지지 하는 쪽과 실망과 반대하는 쪽이 팽팽합니다. 그럼 먼저 박찬호의 야구 인생을 돌아 보겠습니다.


[다저스 시절 박찬호의 투구폼]


박찬호의 미국야구의 도전기.

1973년 6월 30일생 충남 공주 출신의 박찬호 올해 나이 만37세입니다.
미국 메이저리그란 생소한 무대를 한국민들에게 처음으로 접하게 해준 박찬호.

미국야구의 진출 계기는?

[공주고 시절의 풋풋한 박찬호의 모습과 1994년 다저스 입단 모습.]

1991년 고교대표팀으로 한-미-일 굳윌게임에 처음 태극 마크를 달았던 박찬호(그것이 결정적으로 미국 진출의 계기가 됐습니다.)는 1993년 호주 아시아 선수권에 이어 같은 해 버팔로 유니버시아드 대회에 출전, 쿠바 등을 상대로 역투를 하면서 MLB 스카우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당시 고교 시절160km의 공을 뿌렸으니 당연히 눈에 들었을 겁니다.
그는1994년 LA 다저스에 마이너 계약하고 입단식을 가졌습니다. 그로부터 2년후 처음으로 마이너 생활을 청산하고 꿈에 무대 메이저리그 무대에 입성하게 됩니다.

                                                   [청년 시절의 박찬호.]
박찬호가 첫승을 거둔 날은 1996년 4월7일 시카고 컵스와의 원정경기. 선발 라몬 마르티네스의 급작스런 부상으로 기회를 잡은 박찬호는 2회 등판해 4이닝 7탈삼진 무실점 호투로 빅리그 데뷔 첫승을 달성합니다. 그로부터 17년동안 메이저리그 생활을 하며 총 7개팀 [LA다저스,텍사스레인저스,샌디에이고 파드리스,뉴욕메츠,필라델피아 필리스,뉴욕양키즈,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을 오가며 동양인 최다승 124승을 거둔 지난 10월2일 플로리다 원정 경기를 끝으로 메이저리그 무대를 사실상 은퇴했습니다.

등번호 61번과 동양인 최다승의 의미는?

[박찬호와 늘 함께한 등번호 61번]
박찬호의 등번호 61번은 찬호에게도 상징적 의미가 있지만 당시 한국에 후배 선수들에게는 
동경의 대상 이였습니다. 그래서 박찬호가 미국 진출 이후 많은 후배들이 미국 무대 진출 할때 끝 번호를 1을 선호 했습니다. 41, 51,61 등등.

그리고 이사아 최다승의 의미는?

[박찬호 다저스 전성기때 사진과 최근 기자회견. 사진 뒤 날짜가? 2011년 ㅋ]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1승을 거둔다는 자체도 매우 힘들입니다. 수많은 야구 선수들이 동경하는메이저리그에서 통산 선발100승 이상을 했다는 건 엄청난 업적입니다. 메이저리그130여년 역사 동안 단 381명 뿐 입니다. 박찬호는 선발로는 113승 2008년 부터 전업한 불펜으로 11승을 달성했습니다. 최전성기로는 2000년 다저스 시절 개인 한시즌 최다승 18승10패 방어율3.27 첫 완봉승 최다 탈삼진을 기록하며 당시 내셔널리그 사이영 상 후보에 올랐지만 아쉽게 떨어졌습니다.
팀성적만 좋았다면 받았을 겁니다. 그당시 불펜이나 팀타선 부진으로 날려먹은 승수가 5승이상으로 기억됩니다.

이름 : 페르난도 타티스 (Fernando Tatis Jr.) 
출생 : 1975년 1월 1일
신체 : 키178cm, 체중88kg
출신지 : 미국
직업 : 야구선수
포지션 : 내야수
[박찬호에게 불명예를 준  페르난도 타티스]
하지만 좋은 기록만 아니죠.박찬호는 LA 다저스 소속이던 1999년 4월 24일 다저스타디움에서 세인트루이스 3루수 페르난도 타티스에게 한이닝 2개의 만루홈런을 얻어 맞는 치욕을 당했었습니다. 메이저리그 131년 역사상 특정투수가 특정 타자에게 한이닝에 2개의 만루홈런을 허용한 것은 이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기록됩니다. 박찬호는 지난 1999년 6월6일(현지시간 6월5일) 일어났던 유명한 발차기 사건 일화도 있습니다.

[유명한 이단 옆차기 당시 사건의 사진]

당시 박찬호는 4회말 보내기 번트를 성공시킨 뒤 벨처에게 태그아웃을 당했는데 강하게 태그를 하는 바람에 말싸움을 벌였고, 결국 발차기 사건까지 벌어져 출장 정지와 함께 벌금까지 물었습니다. 그 이유는 지난 1박2일 출연 당시 그 벌처라는 선수가 인종차별적인 발언과 조국을 무시하는 애기를 해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때 모습과 2006년 WBC 역투 모습]

박찬호는 실제로 애국심이 대단한 선수입니다. 총6번의 국가대표 경력의 박찬호는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금메달 2006년 WBC에서 일본을 침몰 시키며 메이저리거의 위용을 과시했습니다. 박찬호가 미국진출 해서 당시 IMF로 힘들었던 국민들에게 덩치큰 미국 선수들을 삼진 잡으며 승리하는 모습은 많은 국민들에게 할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저도 그 당시 박찬호 경기하는 날이면 새벽에 일어나 중계를 보던 기억이 나네요.^^]

영원한 영웅으로 남아주길 바랬는데...


[오늘 오릭스 유니폼을 입은 박찬호-어색하네요.]
솔직히 박찬호선수의 일본행 개인적으로는 반대합니다.
뭐 어제 기사보니 일본에서 메이저리그 동양인 최다승을 거둔 박찬호가 입성했다고 대서 특필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박찬호가 국내나 다른 무대에서 뛰고 은퇴하는거 보다 끝까지 미국에서 마이너든 메이저든 현역으로 있다가 마운드에서 은퇴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괜히 일본 진출했다가 여태까지의 명예가 실추 될까 한편으로 걱정도 됩니다. 분명 일본 야구와 미국 야구의 차이점과 환경은 많이 다릅니다.
17년간 미국 야구만 했던 박찬호가  잘 적응할지 걱정도 됩니다 견제도 심할껀 당연하고요
만약에 성적이라도 부진하면 한일 양국에서의 비난을 어떻게 이겨낼지.... 걱정도 됩니다.

박찬호가 일본행을 결정한 이유는?

[박찬호와 부인 박리혜 그리고 귀여운 두딸의 모습.]

아무래도 재일동포 3세인 부인 박리혜 씨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여집니다.
박리혜 씨는 직업은 박리혜씨는 재일동포 3세 출신으로 메뉴 플래너와 푸드 라이터를 겸하는 프랑스 요리전문가로 집안은 일본에서 탑5안에 드는 부동산 재벌에 딸 입니다. 그리고 박찬호가 미국에서 힘들어 할 때 부인의 내조와 귀여운 두딸의 응원이 큰 힘이 최다승을 이루는데 큰 힘이 되었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랜 외국 생활로 지친 가족과 아내를 위해 낮선 일본 무대를 진출한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 됩니다.

[같은 팀동료가 된 이승엽]

그리고 지금은 부진하지만 국민타자 이승엽 선수가 팀 동료로  있다는 점도 오릭스를 선택하게 된 또 하나 이유로 보여집니다.
야쿠루트 임창용, 라쿠덴의 김병현, 지바롯데의 김태균, 소프트뱅크의 이범호등 한국 선수들이
많이 일본 무대에 진출한 만큼 크게 외롭지 않아 보입니다. 
또 이제 최다승이란 목적도 이루었고 타자이긴 하지만 후배 추신수의 활약을 보고 이제 내가 떠나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겁니다.

[올해 마지막 팀 피츠버그 시절 역투 모습과 후배 추신수 사진]

마지막 이유로는 미국에서는 나이도 있고 선발로 뛸 수 있는 기회가 적어짐으로써 선발 투수로 남아서 은퇴하고 싶은 마음이 크게 작용 했을 겁니다. 오릭스에서 선발이 보장 되었는지는 아직 모르지만 큰 이변이 없는 한 선발 보직을 맡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불펜으로 뛰려고 일본 진출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릭스도 박찬호의 커리어와 구단의 홍보와 흥행을 위해서라도 선발을 줄 것 입니다. 오늘 입단식에 동석한 오릭스 무라야마 본부장은 선발로 뛴다고 천명 했습니다.

박찬호의 입단은 아는 지인의 주선으로 지난달 이루어 졌다고 하는데 그 지인이 이승엽일까요?
박찬호의 계약에 대해 정태호 팀61 대표이사는 "1년 연봉 120만 달러에 인센티브 100만 달러로 최대 220만 달러(한화 약 25억4100만원)이며 매 이닝 10만원 씩 한국 내 복지재단에 오릭스가 기부하며 한국인 코치 연수와 유소년 야구 발전 기금을 구단이 부담하기로 했습니다.
[역시 좋은 선행도 하네요. 하지만 왠지 씁쓸한 기분을 지울수가 없네요...]

 박찬호의 앞으로의 과제는?

[오릭스 유니폼의 등번호는 역시나 61번. 오릭스 무라야마 본부장과 악수하는 박찬호.]
박찬호의 일본 적응력이 얼마나 빠르냐에 달려 있을 겁니다.
박찬호 선수는 앞으로 새로운 도전이란 마음으로 임해야 할 것입니다. 신인의 마음으로 초심으로 돌아가 부담을 덜어내고 경기를 한다면 이승엽 선수와 함께 일본 정복도 가능하리라 믿습니다.

-포스트를 마치며-

박찬호의 제2의 야구인생이 시작 되었습니다. 물론 선택은 개인의 자유지만 좀 실망 스럽기도 합니다. 박찬호 정도에 커리어 라면 그냥 미국에서 은퇴하는게 가장 좋은 모습이지만 가족을 무시할 수는 없는게 현실이죠. 1년 계약(연봉 최대220만불 한화25억원)이라 1년 일본에서 뛰고 1~2년 정도 한국에서 선수생활을하고 은퇴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박찬호의 야구인생은 다시 출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미국 무대에 다시 돌아갈지도 모르지만 그럴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나이도 있고
그동안 코리안특급 박찬호 선수가 보여준 미국 야구에서의 모습은 국민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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