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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산다 용감한 형제, 도 넘은 편견과 비난 아쉬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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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 산다 용감한 형제, 도 넘은 편견과 비난 아쉬워


딘델라 2016. 3. 12. 10:26

이번주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게스트는 작곡가 용감한 형제였다. 용감한 형제의 출연은 왠지 도끼의 출연을 떠올렸다. 아무래도 그가 엄청난 저작권을 벌어들이는 유명 작곡가이기 때문에 그의 삶은 겉보기에 모두의 부러움을 살 만큼 화려했다. 전망이 탁 트이는 넓은 최고급 펜트하우스에서 반려견과 단 둘이 사는 용감한 형제! 방송이 나간 후 그의 집이 화제가 되었다.

 

 

긴 복도에 방이 여러개, 화려하고 넒은 주방과 다양한 인테리어 소품들! 혼자 살기엔 정말 큰 집이었다. 또한 성격이 깔끔해서 집안의 살림들은 잘 정돈되어 있었고, 애견인답게 일어나자 마자 강아지를 챙기는 모습은 인간적이었다. 아무래도 외로우니까 그는 강아지를 살뜰히 챙겼다. 집안을 돌아다니며 강아지가 실수를 한 건 없는지 보고, 아침 운동도 긴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면서 시켰다. 강아지와 알콩달콩 놀아주는 모습은 거친 외모와 달리 다정함이 넘쳤다.

 

 

방송이 끝나고 언론들은 그의 화려한 삶에 관심을 가지고, 그간 모은 저작권수입이 수십억대로 엄청나다는 걸 부각시켰다. 워낙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킨 스타 작곡가니까 당연히 저작권수입은 상당했다. 그래서 그는 꿈꾸는 일들을 하나씩 해나갈 수 있었다. 자신이 설립한 엔터테이너 사업도 운영하고, 자신의 건물도 있고 레스토랑도 가지고 있었다. 외형적으로 화려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마냥 화려해 보이는 삶 뒤에 그의 꿈에 대한 열정과 노력들이 담겨 있었다.

 

 

용감한 형제는 혼자 산지가 13년이 되었다 한다. 그는 어릴 적 힘든 생활을 보냈다. 집이 잘산 것도 아니고 방황도 많이 했다. 그래서 학교도 그만두고 나쁜 길로 흐르기도 했다. 부모님 속도 많이 썩이고, 스스로 그야말로 사고뭉치였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꿈이 생겼다. 바로 음악이었다. 음악을 만나고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다. 그간의 방황을 청산하고 음악만은 최고가 될 수 있다는 막연한 자신감을 주었다. 처음에 음악을 한다 했을 때 부모님과의 마찰도 상당했다고. 음악을 한다니 부모님에겐 그 역시 방황으로 비쳤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꿈을 위해서 혼자 살기 시작했다. 작은 폐공장을 얻어서 음악에만 빠져서 나가지도 않고 2년간 음악만 생각하며 살았다. 그래도 너무 재밌었다. 생애 처음 느껴보는 희열과 자신감이 그에겐 전부였다. 이렇게 지금은 남부럽지 않은 화려한 집을 가지고 있으나, 시작은 완전히 달랐다. 지하 폐공장 습기 가득한 곳에 달랑 악기만 가져다 놓고 생활을 했다. 어렵게 음악을 배웠기에 그는 성공에 대한 열망과 집착도 컸다고 말한다. 살면서 자연스레 성공에 대한 집착이 몸에 배일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넓은 집에 대한 로망도 컸다.

 

 

밑바닥부터 성공의 발판을 다졌기에 그의 성공은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어려움을 겪고 이뤄낸 성공은 그만큼 가치가 있다. 그래서 단편적인 겉모습만 보고 편견을 가지는 일부의 시선이 아쉬웠다. '나 혼자 산다'에 방송 기준이 딱히 있는 건 아니다. 간혹 연예인들의 화려한 삶이 비치면 무작정 비난하기 일수인데 그들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내면을 봐야 하지 않나 싶다. 방송에 보여지는 면이 비주얼적인 부분이니 화려한 집과 삶이 부각되었지만, 방송이 강조하는 건 용감한 형제의 인생이었다. 스타 작곡가가 마냥 쉽게 되는 것도 아니고, 얼마나 많은 노력 끝에 이룬 행운과 기회였는지 그는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도 넘은 편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공감이란 결국 내적인 부분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방송을 보고 그의 성공이 더 멋져 보였다. 속을 많이 썩였던 만큼 이제는 효도하려는 아들의 모습도 찡했고 말이다. 부모님께 생활비도 드리고 자주 전화도 드리고! 투박한 겉모습과 달리 엄마에겐 여전히 아기 소리를 듣는 게 반전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직도 아들의 성공이 믿기지 않아 과거를 생각하며 눈물을 짓기도 한다고. 가족이란 말은 누구에게나 벅찬 것이었다.

 

또한 저작권 수입만으로 편안히 살 수도 있는데, 도전을 멈추지 않는 집념을 가지고 있었다. 제작자로서 성공을 꿈꾸는 그는 일만 아는 워커홀릭이라서 휴가도 수년간 못가고 제주도 조차 안가봤다고 한다. 수많은 직원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CEO기에 마냥 편하게 지내는 건 아니였다. 책임감의 무게도 상당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목표를 명확히 설정하고 앞으로 전진했다. 가장 감동적인 건 밥차에 대한 꿈이었다. 밥차를 30대를 사서 어려운 이웃에게 밥을 나눠주고 싶어 했다.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닌 어려운 이들에게 성공의 성과를 나눠주고 싶어하는 훈훈함이 감동이었다. 세상과 소통하려는 노력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한 이들의 공통점이지 않나 싶다. 이처럼 보여지는 것이 다가 아니였다. 외로움은 자신을 성숙하게 만든다는 그는 긍정적이고 열정적이었다. 그래서 단편적인 부분으로 남의 인생을 평가하는 게 부끄러울 만큼, 성공이 당당하기에 부러움 보다 열정을 본받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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