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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팍도사, 일본이 망친 석굴암의 아픔에 분노하다


딘델라 2011. 8. 25. 15:40
무릎팍도사, 일본이 망친 석굴암의 아픔에 분노하다



<전국에 답사여행 신드롬을 몰고 온 문화유산 전문가! 대한민국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담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기행문학의 대표주자 유홍준의 고민은? “이제 좀 어른대접을 받고 싶어요~>




이번 무릎팍도사에서 게스트 유홍준(전 문화재청장)편을 보게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기대를 안하고 봤는데 점점 입담 좋으신 유홍준님의 이야기에 빠져들었습니다. 아내와의 첫사랑이야기와 추억이야기, 감옥에 투옥되었을때의 이야기와 미술평론가로 길을 걸어오게 된 이야기, 가장 좋아하는 유적지 선암사이야기, 외국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석굴암 이야기, 하나도 빼놓지 않고 시간가는 줄 모르고 유익하게 봤습니다.

특히나 그중 가장 귀기울이며, 관심가지고 들은 이야기는 석굴암 이야기 였습니다. 석굴암하면 수학여행때 봤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 곳입니다. 유리 넘어로 밖에 볼수없던 석굴암이 생각납니다. 당시에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지만, 그저 수학여행왔다고 들떠서 잘 기억이 나지않았었는데, 유홍준님이 들려주신 석굴암의 아픈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되니,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유홍준님은 책에 " 대한민국의 모든 유산이 다 파괴되더라도 석굴암 하나만 남아도 세계의 자랑거리가 될것이다 "  " 석굴암 하나만 남아도 여기사는 민족들은 참으로 위대했구나 말할것이다 "라고 적었다고 합니다. 강호동씨는 부끄럽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가묻습니다.

석굴암은 현재 유리창을 통해서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술사학 교수니깐 학생들이 직접 느낄 수 있게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서 30명정도의 학생들을 데리고 견학을 갔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 학생들 중 한명쯤은 꼭 운다고 합니다. 그 아름다움에 압도되어 감동받기 때문입니다. 또한 석굴암의 탄생과 과학적인 면을 이야기해주면 존경과 감탄이 절로 나온다고 합니다.


 

통일신라 751년(경덕왕) 김대성이 25년에 걸쳐 완성한 석굴암은 본존상을 둘러싸고 있는 원형의 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당시 놀라운 것은 기계의 도움도 없이, 평평한 벽을 휘게 만들어 이어서 원형의 벽면을 16개을 만들어서 정교하게 이어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인 남천우 교수는 이 석굴암을 측량하고 매우 놀랐다고 합니다.

신라 사람들이 원형을 벽을 만들기 위해, 어떤 식으로 구하던지 sin12도의 값을 지금보다 정확하게 구했기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당시 측량당시 1m를 재었는데 1mm의 오타도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만큼 석굴암은 설계에서 시공까지 완벽한 건축물이라고 평가한다고 합니다. 조상님들의 위대한 과학수준에 존경심이 우러 나왔습니다.


 


 

조선시대 억불정책으로 석굴암이 당시 폐사되었다가, 일제 강점기 우체부가 그곳을 지나다가 다시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어렵게 세상에 나온 석굴암은 일제에 보고가 되면서, 당시에 불상 2개가 유실이 되었다고 합니다. 일본인들이 당시의 유물을 가져간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총 40구의 불상중 38개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이 석굴암을 보고 당시 한민족의 문화는 미개하다며, 당시 자신들의 현대 문화가 더 우월하다는 것을 표출하기 위해, 당시 발견된 석굴암을 고쳐준다는 미명아래 보수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보수를 할 수 없던 일본인들은 결국 석굴암을 전부다 해체하는 무지막지한 일을 벌입니다.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시의 과학으로 완벽하게 만들어 놓은 석굴암을 산산히 해체시켜 버리다니요. 본존불 하나만 남겨놓고 모든 불상을 다 해체하고 1m두께의 콘크리트로 돔을 만들어 인위적으로 돌을 강제로 붙여 놓았다고 합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서 탄식이 나왔습니다. 


 


 

그 이후 멀쩡하던 석굴암에 물이 샜다고 합니다. 바로 결로 현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일제의 우월하다고 떠벌린 과학이 만든 콘크리트 돔이 스스로 미개함을 증명했던 것이죠. 일제의 잘못된 보수 , 한마디로 석굴암을 망친 인위적인 보수로 인해, 우리 석굴암은 아픈 몸으로 겨우 견뎌주고 있던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감로수를 이용해서 찬공기가 바닥에 바로 닿아, 결로 현상이 생기않게 자연적으로 이를 막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일본의 어이없는 욕심과 과욕으로 우리의 석굴암은 그후 물이 더 많이 새서, 할수 없이 또다시 콘크리트로 더 두껍게 덮고, 에어컨까지 처음으로 사용해서 명맥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기계의 진동으로 인해 조금씩 원형이 틀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일제의 악행으로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아픔을 겪고 있는 석굴암의 역사를 들으니, 정말 속상함에 분노했습니다. 마치 석굴암이 겪었던 만행이 일제 시대 우리 민족의 아픔이랑 같아보여 더 슬펐습니다.

보면서 일본은 어디 건드리지 않은게 없구나 화가 치밀었습니다. 아름다운 건축미학과 과학기술의 총아인 석굴암을 원형 그대로 볼 수 없다는 것에 안타까움이 밀려옵니다. 다시 개보수를 한다고 해도 원래대로 돌리려면 조상의 지혜대로 자연의 원리로 복원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합니다. 조상님들의 지혜를 알게 되었지만 빼앗긴 역사 속에서 어떤 것도 지킬수 없다는 것도 함께 깨달았습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에도 불구하고, 석굴암은 그 자체로 전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문화재로 손꼽는다고 합니다. 석굴암의 아픔과 문화재의 소중함을 다시금 알게 된 시간이었습니다. 간만에 정말 유익하게 귀기울여 무릎팍도사를 시청했습니다. 유홍준의 맛깔스런 입담으로 풀어간 인생과 문화재의 이야기를 들으니, 왜 그토록 문화유산 답사 열풍을 이끌수 있었는지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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