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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델라의 세상보기

뿌리깊은 나무, 세종의 대의 정기준 넘다, 감동적인 한글의 보편성 본문

Drama

뿌리깊은 나무, 세종의 대의 정기준 넘다, 감동적인 한글의 보편성


딘델라 2011.11.10 10:40


뿌리깊은 나무, 세종의 대의 정기준 넘다, 감동적인 한글의 보편성




감동적인 한글의 보편성



세종은 " 모두들 성리학에 반한다 하지만, 삼봉만은 과인과 뜻을 같이 했을 것이다. " 라며 정기준인 가리온에게 사람의 해부를 지시합니다. 정기준은 세종이 도대체 무슨 꿍꿍이고, 해부가 왜 삼봉의 뜻일까 혼란스러워 합니다. 성리학이 지배한 시대, 인간을 해부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죠. 시신해부로 목, 입등 소리기관의 모형을 따서 그림으로 남긴 세종, 세종은 가리온에게서 각 소리 기관에 대한 설명을 듣습니다.

세종이 시신해부를 했다는 소리를 전해들은 박팽년과 성삼문은 화들짝 놀라며, " 유학을 섬기신 전하께서 어찌 이런일을.. 대체 해부가 글자를 만드는 일과 무슨 상관입니까?, 전하의 글은 이미 완벽합니다. 그저 뭐든 만지고 봐야하는 전하의 편집병 때문에 이런 참혹한 일을 한게 아닙니까? " 이에 모두들 동조하며 세종에게 설명을 해달라 합니다.



세종은 자신의 뜻을 이해 못함에 서운함에 분노하지만, 왜 해부가 필요한지 차근히 설명합니다.

" 이 글자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한자와 우리 글자의 차이점이 무엇이겠느냐, 한자의 제작기간은 수천년이다. 허나 우리 글자는 고작 10년이다. 한자를 만들어 온 이는 수백만명이다. 허나 우리 글자는 고작 여기있는 우리가 전부다.

(성삼문: 자연발생적으로 만들어 진게 아니다?) 한자는 수천년의 세월동안 사람에서 사람으로 아버지에게서 아버지로 아들에게서 아들로 이어지며 만든것이다. 허나 우리 글자는 (성삼문 : 인위적으로 만든것이지요).. 바로 이런 절차상의 문제가 우리 글자의 치명적인 단점이다. 만든이가 수백만명이라는 것만으로도 그것은 보편성을 가지게 된다. 허나 우린 그렇지 않다 "

" (박팽년 : 허나 보편성과 해부가 무슨 관계입니까?) 세상에서 가장 큰 보편성 곧 자연의 이치를 담기위하기 때문이다. 과인이 왜 소리에 충실한 글자를 만들려하겠는가? 소리가 자연이고, 소리를 내는 원리가 곧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냥 알지도 못하는 다른 나라의 문자를 본떠 만든것이 아니라, 이 글자들은 내 혀, 목구멍, 이를 닮았다. 그게 백성들의 것이 되길 바라는 것이다.

뱃사람들이 왜 미신을 잘 믿겠는가, 바다라는 거대한 자연을 만나기 때문이다. 나도 만났다. 바로 백성이다. 거대한 백성..하여 믿고 싶었다. 내 이렇게 글자를 만든다면, 백성들이 써 줄것이라는 그런 믿음...헌데 이게 잘못된 것이냐 ? "
세종의 감동적인 한글의 보편성, 바로 백성을 위한다는 말에 다들 감동의 눈물을 흘립니다.



한석규의 열연이 돋보인 이 장면은 정말 감동스럽습니다. 마치 해부장면은 허준의 해부장면을 떠오릅니다. 의학과 백성을 위해 스승의 시신을 해부하던 허준의 감동만큼, 백성을 위해 남들이 잔인하다 경악하는 일을 하는, 세종의 결단 역시 감동을 줍니다.

한글의 보편성을 위해 해부를 결심했다, 설명하는 세종앞에 유교적인 생각으로 잔인하다 반대하지 못하고, 오히려 감동의 눈물을 흘리는 것은, 백성을 위하는 일보다 더 완벽한 대의명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한글 창제의 과학적인 창제과정을 더욱 강하게 하기 위한 장면인 동시에, 세종의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시신해부를 할 만큼 얼마나 큰 결단인지 보여줍니다.

한글의 보편성을 백성과 자연의 이치에서 찾으려는 세종의 마음은 바로 한글창제의 이유
이기도 하죠. 그것이 인위적이라 당장에 한자에 기반을 둔 양반에게는 무시당할지 모르지만, 그것이 모든 백성의 혀,목,이를 형성해 만들어, 보편적으로 모든 백성에 적합한 글이기에,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수 있게 만드는 것. 해부까지 하면서 완벽한 소리를 담고자 함은, 소리자체가 누구나 가진 보편적인 자연의 것이고, 소리를 내는 기관을 닮은 글자란 백성 모두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백성을 거대한 자연으로 바라본 세종의 마음은 세종의 정치가 바로 백성을 위하는 정치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백성을 위하는 일, 그것이 진정한 정치고, 그것이 세종의 뜻입니다. 백성을 위한다는 대의만큼 가장 큰 보편성은 없는 것입니다. 한글이 이토록 쉽게 익히고, 쓸 수 있는 것은 바로 백성을 생각하고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다시한번 한글을 만든 세종대왕의 마음에 감사하게 됩니다. 현재는 쉽게 써서 그것의 고마움을 모르고 있으나, 창제할 당시 이토록 치열한 고민과 열정으로 형성되었다는 것,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세종의 대의 넘지 못하는 밀본 정기준의 한계


모든 밀본의 비밀조직은 밀본지서에만 관심을 둡니다. 이신적과 심정수도 처음과 다르게 정기준을 완벽히 믿지 못하게 됩니다. 정기준은 현재 밀본지서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심정수와 이신적은 밀본지서를 가지고 있지않은 정기준을 믿고 따르기 어렵다 여깁니다. 이신적은 정기준과 함께한 밀본모임에 참석은 하지만, 그곳에서 정기준이 난처해할 밀본지서의 유무를 가지고 그를 난처하게 만듭니다.

정기준은 대의명분만 있다면 그 종이쪼가리가 무슨 대수냐 여깁니다. 허나 가장 높은 원로 혜강까지 밀본지서의 유무는 아주 중요하다 말합니다. 성리학에 기초한 사대부들은 그 밀본지서의 기초아래 모이길 원하고, 역사는 가장 마지막 모습만 기억하기에, 마지막 모습이 역적의 모습이길 원하지 않는다 합니다. 사대부들이 이렇게 정기준의 뜻에 따라가지 않는 것은 바로 세종이 왕권이나, 현재 통치를 잘하기 때문에 반대를 위한 대의명분이 약하다면 결국 역적으로 보일 수 있기때문입니다. 정도전이 밀본을 세운 그때랑 현재가 너무나 다른 것이죠.

정기준은 "  왕이 처음 집현전을 만들었을때 저 또한 속았다. 이방원과 달리 의정부를 흔들리지는 않았다. 허나 지금은 오직 임금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겠금 논리를 펴고 있다. 집현전이 경연을 막고, 사관을 배출시키고, 왕의 논리로 무장한 사람들을 배출시키고 있다. 삼봉이 왕의 권한을 제한한 이유가 무엇인가? 백성을 위해서다. "

" 이도는 훌륭한 임금일지 모르지만, 그래서 더 위험하다. 다음 왕은 어찌할건가, 또 그다음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왕이 나온다며? 해서 삼봉이 체계를 만든것이다. 헌데 이도는 체계 핵심을 건드렸다. 그것이 조선을 망치고, 지금 망치고 있다. 이미 왕이 조정 대신들 모르게 어떤일을 벌이는데도 우린 모르고 있다. 헌데도 그따위 천쪼가리 밀본지서에 대의가 있나? "
라며 현재 세종의 집현전을 통한 통치가 결국 자신의 뜻을 펴기 위한 것일 뿐이라며, 이도의 뜻에 반합니다. 물론 정기준의 말도 틀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논리에는 놓치고 있는게 너무나 많습니다.



과연 누가 백성을 위하는가, 왜 세종은 몰래 일을 하는가, 과연 재상국가는 백성만을 위할까?

세종의 일, 그것은 백성의 일이기도 합니다. 그가 농사일을 참관하고, 장영실을 등용하여 과학을 발전시키고, 조세법을 고심하고 만든 일, 모두 백성의 입장에서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헌데 정기준은 왜 집현전에서 경연을 막고, 사관을 배출시키고, 그런것들에만 신경쓰고 세종이 한 일을 보지 못하는가, 그도 어쩔 수 없는 사대부이기 때문입니다. 성리학이 흔들리면 백성을 다스릴 수 없다, 일전에 심종수가 말했던 것처럼, 밀본에게는 백성은 다스릴 존재일 뿐 인 것입니다. 각 유림들이 잘 치세하고, 자신들의 세계가 잘 지켜지는 것이 결국은 백성을 위하는 일이다 여기는 것입니다.

세종이 집현전을 통해 몰래 일을 하는 것부터가 바로 그런 백성의 일이라는 것이, 사대부의 세계에서는 쓸데없는 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한글창제가 그 사대부들에게 반대에 부딪힐 것이라는 것을 세종은 알고 있습니다. 권력을 가진자의 또다른 특권인 문자를 백성에 공유하는 일을 과연 그들이 쉽게 그러라 하겠는가? 중화사상에 위배된다 펄쩍 뛰던 송삼문처럼, 오랫동안 그게 당연하다 여긴 사람들이기게 절대로 생각할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그건 밀본 역시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그게 바로 밀본과 세종의 다른 점이지죠. 

정기준은 사리사욕을 채우는 왕이 나오면 어쩔 것인가 물었지만, 사리사욕을 채우는 재상이 나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는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정치체계도 다 정답은 아니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떤 사람이 정치를 하느냐 입니다. 아무리 완벽한 정치체계도 그 사람이 잘못되면, 독재가 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체계 아래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독재가 됩니다. 과연 재상국가는 백성만을 위할까? 왕이 힘이 없으면 또 그 위에서 휘두를 사람들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중요한것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온 중요한 장면들은 결국, 정기준의 밀본과 세종대왕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이었습니다. 세종대왕의 한글창제는 아직은 미약하지만, 그 뜻에 대한 신뢰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정기준은 밀본지서만 바라볼 정도로 밀본조직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습니다. 결국 정기준의 대의명분은 세종대왕을 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정기준은 아직 세종대왕의 뜻을 알지 못합니다. 채윤은 밀본을 제대로 찾기 위해, 밀본을 위한 그림을 그립니다. 바로 자신의 복주머니를 그려, 이것을 아는 자만이 자신을 찾아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정말 점점 더 흥미를 더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들이 한글창제를 보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정말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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