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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 세종과 정기준의 끝장토론에 담긴 뼈있는 의미 본문
뿌리깊은 나무, 세종과 정기준의 끝장토론에 담긴 뼈있는 의미
세종과 정기준의 끝장토론에 담긴 뼈있는 의미
세종대왕(한석규)와 정기준(윤제문)의 한글창제를 두고 벌인 끝장토론은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두 사람의 토론내용을 누가 더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우리 현대 사회에 던져주는 질문이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종대왕은 한글 창제 이유를 삼봉 정도전의 사상과 맞닿아 있고, 그는 언로의 중요성에 대해서 알았다 합니다. 간관(한자를 사용 백성의 소리를 대신 전함)이 아닌 자로(字路)를 열어 백성과 직접소통을 할 것이며, 이는 성리학에 위배된 것이 아니다 말합니다. 그리고 정기준에게 글자를 반대하는 이유가 신분질서를 어지럽혀 기득권을 지킬 수 없어가 아닌가 묻습니다.
이에 정기준은 " 사대부는 기득권이 아닌 질서, 조화, 균형이다. 왕과 귀족처럼 사대부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수양하고 공부하고 과거를 통해 능력을 인정받아야 될 수 있다. 사대부는 신분의 이름이 아니라 자질과 수양과 능력의 이름이다 " 라고 주장합니다. 세종은 이에 " 결국 사대부도 부패하고, 욕망을 가지고 기득권을 가지고 세습하게 될 것이다. 음서제도를 부활시키고 썩게 될 것이다. 그런 너희들을 누가 견제할 것 인가? 하여 나는 백성으로 하여금 그 역할을 하게 할 것이다. " 말합니다.
이에 정기준은 " 허면 백성의 욕망, 거대한 군중의 욕망은 어찌할 것인가? 그 욕망이 다 풀어지면 세상은 지옥이 된다. 백성의 욕망을 다스리려 공자등 철학자와 기독교, 불교, 유학으로 욕망을 통제하고 다스린 것이다. " 이에 세종은 " 그것을 어찌 지옥이라 하는가? 백성이 글을 배워 삼강오륜을 알게 되면 사람의 도리를 알고 성리학적 이상에 가까이 갈 수 있다 " 며 반문합니다.
정기준은 " 백성이 글을 알고 읽고 쓰는 즐거움을 알면 지혜를 가지게 되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쓰려한다. 그 욕망은 정치를 향할 테고, 그들의 지도자를 스스로 선출하게 될 것이다, 정치는 책임이다. 그들이 뽑은 지도자가 실정을 하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 묻습니다. 정기준의 말에 세종은 " 백성에 대한 신뢰가 어찌 이리 없는가? " 한탄합니다. 정기준은 백정으로 살며 백성은 희망이 없고, 무지하고 변덕스런 군중은 역사를 발전시킬 수 없고 책임질 소수만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이에 세종은 정기준을 측은해 합니다.
이에 정기준은 주상의 진심을 안다며 " 주상의 속마음은 책임을 나누려는 것이다. 백성이 귀찮은 것이다. 그것이 어찌 사랑인가? " 세종은 이 말에 화를 내며 나는 백성을 사랑한다 말합니다. 정기준은 세종을 더욱 분노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정기준은 윤평에게 세종을 죽이라 명하며, 글자를 아는 모두를 죽이겠다 합니다. 그때 강채윤이 나타나 정기준의 목에 칼을 대고, 결국 윤평과 채윤은 소이의 중재로 칼을 거두게 됩니다. 한석규와 정기준의 치열한 설전은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두사람의 토론은 정말 많은 생각이 들게 합니다. 사실 정기준의 말은 기득권 유지를 위한 포장이나 다름이 없죠. 사대부는 왕, 귀족과 다르다고 말하지만 결국은 양반만이 사대부가 되는 것이죠. 소양과 자질은 백성에게도 있을텐데 철저하게 그것이 사대부만이 가진 것이라 자부하는 특권의식은 정기준의 한계죠. 세종은 백성에 대해 긍정의 힘으로 바라보는 것이고, 정기준은 백성을 부정합니다. 세종이 정기준을 측은하다 하는것은 바로 그가 백정이 되어 살았지만 백성을 끝까지 무지하다며 무시하는 태도를 가지고 정치를 하는 것이 사대부들의 기득권이 아니고 무엇이겠나?란 생각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역사는 소수 특권층만이 움직이고 만들 수 있다는 기득권의식은 더 먼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발언이죠. 세종의 편에선 강채윤을 향해 노예의식이라며 천한 것이 알지도 못해 그러냐며 무시하는 말에 특권의식이 한아름 담겨 있습니다. 무조건 백성의 선택은 그르칠 것이라는 불신 역시 결국은 소수만을 위한 정치, 힘을 나누기 싫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정기준의 말에는 뼈있는 말이 있죠. " 그들이 뽑은 지도자가 실정을 하면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 그 말은 현대인들이 깊이 마음 속에 새겨야할 물음입니다. 정기준은 그 책임을 백성이 지지 않아 지옥이 될 것이라 하지만 결국 책임은 백성이 지게 되고 그 난관을 헤쳐나가는 것도 백성의 몫이 될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 국민들이 잘못된 지도자를 뽑았을때 그 책임은 바로 뽑은 사람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손에 투표권이 주어졌음에도 군부독재, 그리고 비리 정치인에게 투표하며 그릇된 선택을 했고, 그 책임은 결국 국민들이 짊어지며 고통 속에 스스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리고 당하고 또 당하면서 속고 또 속으면서도 매번 그들의 간교한 놀임수에 놀아나 그릇된 욕망으로 자신의 권력을 남발했죠. 정기준의 말은 비약일 수 있지만, 국민에게 권력을 주었을때 그것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결국 백성을 다 죽일 수도 없고 다 백성이 독박써야 하는 것이기에 신중한 선택을 스스로 해야 한다는 것을 현대인들에게 들려줍니다.
두 사람의 토론은 비록 한글창제라는 반대와 찬성의 토론이지만 그것은 단순한 글자토론을 뛰어 넘어 글자하나로 풀어낸 일종의 정치담론과 같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 손에 쥔 투표권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면 기득권들은 그 책임을 백성에 돌려 책임 면피를 하게 됩니다. 국민들의 신뢰로 뽑아 주고도 결국 그들이 잘못한 것을 나를 뽑은 니들 탓이라며 빠져나가는 것이죠. 세종대왕은 백성이 권력을 가져 제대로된 기득권의 견제가 될 것이라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제대로된 사람을 뽑았을 경우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쥔 권력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그 책임은 국민이 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책임을 지기 싫어 사대부의 세상에서 그 억압된 보살핌을 받는게 나을까요? 아니죠 비록 수십번 깨지고 당해도 결국 실패를 통해 깨닫고 그 과정을 통해 단단해 지는게 비록 오랜 시간이 걸려도 더 나을 것입니다.
정기준은 백성에게 권력을 주는 것, 책임을 나누는 것은 백성을 귀찮아하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 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실패를 하는 때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깨닫고 옳바르게 될 것이라는 믿음, 백성을 더욱 사랑하는 그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의 역사를 되돌아 스스로 권력을 쥔 역사는 너무나 짧죠. 순간 찰나입니다. 그 짧은 순간 조금 넘어졌다고 스스로 힘을 놓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세상이 별로라고 스스로 주어진 힘을 포기하기 보다, 계속 도전하는 것이 세종대왕이 진정 백성을 사랑으로 가르치려 한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훈민정음,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그 뜻처럼 우리가 가진 글자, 그리고 글자가 뜻하는 백성의 힘을 제대로 바르게 쓰도록 늘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모두를 울게 만든 세종의 부성애
세종대왕은 자신이 글자를 만든 것이 백성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책임을 나누려는 것이고 귀찮기 때문이라는 소리에 자신의 초심을 들킨 듯 해 고민합니다. 또한 정기준은 세종의 글자로 백성에게 삼강오륜을 가르치고 성리학을 쉽게 배우게 할 지 모른다 생각하며 고민하게 됩니다.
하지만 광평대군이 평양에서 활자인쇄로 온 것을 알고 광평을 사로잡은 정기준은 세종이 한글로 처음 펴낸 책이 불교경전임을 알고 세종이 성리학 보다 자신의 글자를 빨리 반포하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분노하며, 광평대군을 죽이기로 결심 합니다. 광평은 정기준에게 원하는대로 되지 못하고, 해례본도 찾지 못할 것이라 분노하며 숨을 거두게 됩니다. 광평을 연기한 서준영의 눈물연기가 참 눈물나게 만들었습니다. 첫 한글본이 성리학이 아님에 분노하는 정기준의 모습이 결국 성리학에 집착해 더 큰것을 못보는 기득권 그 이상도 아님에 참으로 한심해 보였습니다.
결국 광평은 죽게 됩니다. 그의 시신은 비단가마에 담겨져 도성 밖에서 발견됩니다. 이 슬픈 소식에 세종은 놀라 버선발로 달려나와 광평대군이 있는 가마로 향합니다. 아비의 마음이란... 세종이 버선발로 광평에게 향하는 모습은 정말 슬펐습니다. 한 나라의 임금도 결국은 아비일 뿐입니다. 백성을 보듬는 마음처럼 자식을 위하는 마음이 어찌 작을 수 있을까. 세종대왕은 가마 속 광평의 평안한 모습을 보고 넋이 나간 모습으로 미소를 짓습니다. 죽지않고 마치 살아있는 아들의 모습에 그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세종대왕. 아들의 시신을 품에 안고 팔을 들어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게 하지만 이내 힘없이 팔이 떨어지자 어쩔줄 몰라합니다. 몇번을 확인하지만 요지부동 안하는 그 모습에 세종은 넋을 잃고 맙니다.
세종은 광평대군의 관을 확인하고 무엇에 홀린듯 정신을 놓은 모습으로 경선전에 들어가 미친 사람처럼 광기에 사로 잡힌 사람처럼 " 너도 날 비난하는 것이지 " 라며 분노합니다. 세종은 광기에 쌓인 모습으로 " 그래 백성을 사랑한게 아니라 미워했다. 난 이 글자를 사랑한 것이다. 그래서 광평이 죽었다 " 라며 미친듯이 웃습니다.
강채윤은 그런 세종을 향해 " 저기서 지랄하고 계시는 분은 임금이 아니다. 자신을 조롱하고 죽어가는 아들앞에 먹칠한 저분은 전하가 아니다. 광평대군은 전하의 아들임을 자랑스러워 했다. 자신의 마음이 사랑인지 모르는 것이 전하다. " 세종은 채윤의 말에 분노하며 칼을 꺼내듭니다. 채윤은 가슴을 치며 " 전하는 울 자격이 없다. 광평대군은 그런 전하를 믿어 신명나게 죽을 수 있다 했다. 전하는 한방울의 눈물도 흘릴 자격이 없다 " 오열합니다.
채윤의 말에 세종은 칼을 떨어뜨리고 한없이 오열합니다. 채윤은 자식의 죽음으로 무너지는 세종을 향해 거침없이 분노를 퍼부어 세종을 깨우칩니다. 한없이 무너지며 자신을 조롱하다가 광평의 아비에 대한 믿음을 듣고 한없이 미친듯 오열하는 세종의 모습은 정말 애처롭왔습니다. 그 연기를 미친듯이 세종에 빙의되어 연기하는 한석규의 신들린 연기에 감탄하며 봤습니다. 마치 세종대왕이 된 듯 아들을 향하는 끝없는 부성애를 담아 감동 연기를 선보인 한석규. 그의 연기를 이제 논하는 단계를 뛰어 넘은 것 같습니다. 그는 그냥 세종대왕 자체니까요.
광평대군의 죽음은 목에 가시가 걸려 죽었다거나 역병으로 죽은 것이라는 등 여러 설이 있습니다. 그의 죽음은 한글창제와 반포시기 사이에 있던 일로 극중 상황과 맞아 떨어집니다. 실제 광평을 많이 아끼는 세종대왕은 그의 죽음 후에 깊은 시름에 빠졌다고 합니다. 아끼던 아들의 죽음을 한글창제와 연관시킨 것은 광평의 죽음 통해 극적 효과를 얻고, 동시에 세종대왕의 인간적인 부성애를 부각시키기 위함 같습니다.
예고에서 세종대왕은 조말생을 시켜 밀본무리를 소탕하기 위한 작전을 피는 듯이 나오고 소이를 밀본의 첩자로 고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무래도 이는 세종의 트릭이 아닐까 추측해 봅니다. 정기준을 피해서 해례본과 가장 연관있어 보이는 소이를 지키기 위한 일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점점 흥미를 더해가는 뿌리깊은 나무, 과연 세종은 정기준의 대결에 어떤식으로 훈민정음을 반포하게 될까요? 정말 기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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