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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목소리가 들려, 민준국 악연에 담긴 불편한 진실 본문

Drama

너의 목소리가 들려, 민준국 악연에 담긴 불편한 진실


딘델라 2013. 8. 1. 07:54

납치된 장혜성은 박수하의 선택으로 살았습니다. 무모하게 민준국을 혼자 대면하려 했었던 예전의 박수하는 없었죠. 박수하는 차변에게 전화를 걸어 경찰이든 특공대든 불러서 자신과 장변을 살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민준국은 장혜성을 납치한 후 박수하를 꼬여내 자신처럼 짐승으로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박수하 아버지로 인해서 아내를 잃고 어떤이도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지 않았기에 지금의 괴물이 되었다며,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도 박수하가 자신처럼 되지 않을거란 보장이 없다며 혜성에게 그것을 보여주고 싶어했습니다. 이처럼 민준국은 박수하와 혜성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수하를 살인자로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박수하는 혜성과의 약속을 지켜냈습니다. 살인을 하면 어떤 이유나 변명도 사라지게 되지요. 그래서 민준국이 장혜성을 죽였다며 수하를 꼬드길때 박수하는 두려움 속에서도 민준국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렸습니다. 선그라스로 자신의 계획이 들킬까 눈을 가린 민준국을 보며, 수하는 혜성이 죽지 않았음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박수하는 절대 당신처럼 되지 않겠다며 민준국의 유혹을 이겨냈습니다.

 

결국 민준국의 계획은 실패로 끝이 났습니다. 수하는 민준국처럼 짐승이 되는 길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수하와 혜성은 민준국에게 선택이 그 시작을 만든다는 것을 알려줬습니다. 민준국은 박수하 아버지가 모든 시작이라 말했지만, 시작은 살인을 선택한 민준국이라고 했지요. 이에는 이 눈에는 눈, 모든 사람이 그렇게 된다면 무법천지가 된다는 어머니의 말을 떠올린 혜성은 민준국이 살인을 하면서 그것이 퇴색되버렸다는 것을 일깨웠습니다.

 

그러나 이날 민준국의 악연은 어딘가 찜찜하며 불편함을 남겼습니다. 분명 혜성과 수하의 말이 맞지만, 그 시작의 의미는 참 애매모호했지요. 그래서 박수하 아버지와 민준국 사이의 악연이 터져나올때 시청자들은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박수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가 어떤 일을 했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민준국의 눈을 통해서 생생하게 확인하고는 민준국이 자살하려 하는 것을 말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민준국은 모든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자, 선그라스를 벗고 허망한 눈으로 어쩔줄 몰라했습니다. 수하는 민준국의 눈을 보았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던 민준국의 사연을 똑바로 볼 수 있었습니다.

 

부인의 심장이식 수술을 받기 위해서 온갖 일을 하며 힘겹게 살아왔던 민준국! 이식수술 1순위자가 되고나서 너무 기뻐했던 그와 부인은 그러나 희망이 한순간에 절망이 되었습니다. 심장이식수술 순번이 밀려난 것이죠. 그 발단이 바로 박수하 아버지와 병원의사의 결탁이었습니다. 역시 부인이 심장병으로 이식이 절실했던 박수하 아버지는 기사를 써주면서 의사와 거래를 할 수 있었고, 그때문에 위중한 민준국 아내는 이식수술을 못받고 죽었던 것입니다. 민준국은 처절하게 억울함과 부당함을 병원에 알렸지만 아무도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민준국의 악연은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살인을 한 것은 분명 잘못되었지만, 그가 괴물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절대로 단순하지 않았죠.

 

그랬기에 이날 민준국이 조금은 불쌍하다는 차변의 말이 어느정도 이해는 되었습니다. " 민준국은 아무도 없었다. 자기를 믿어주는 사람도 자기말을 들어주는 사람도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도. 그리고 자기가 지켜야할 사람도 없었다. 그 한사람만 있었어도 민준국은 다르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박수하처럼 말이죠. 그래서 난 민준국이 아주 조금 불쌍하다. " 목소리를 들어주었던 한사람의 존재가 지금의 민준국과 박수하를 결정지었습니다. 만약 아버지가 살해당했다는 꼬마 박수하의 말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면 박수하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수하가 정의로운 초능력소년으로 살아온 건, 자신의 말을 들어주고 그래서 지켜줘야할 혜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민준국에게도 황달중을 믿어준 신변이나 약자의 소리에 귀기울였던 차변 그리고 증인이 되어준 장변과 같이 절실한 소리에 귀기울여준 누군가가 있었다면 어쩌면 다른 선택을 할 여지는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민준국이 이후에 짐승이 되는 길을 선택한 것은 절대 용서해서는 안되는 일이지만, 민준국의 악연의 시작에 대해서는 그 숨겨진 불편함을 한번쯤은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나온 사건의 가해자들이 우연찮게도 한결같은 구도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쌍둥이 살인사건의 두 쌍둥이를 죽인 편의점 주인은 여자친구를 성폭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무가지에 손을 대서 절도죄로 잡힌 할아버지는 자식에게 피해주기 싫어서 폐휴지를 주워서 생활했지만, 스마트세상에서 종이신문은 사라져갔고 나쁜 선택을 했습니다. 장애를 가진 아주머니는 자신의 소리를 들어주지 않는 50년을 살아오면서 그 울분을 참고 기부를 하며 살아왔지만, 정작 빚때문에 돈이 필요해서 원장을 찾아가 돈을 돌려달라고 사정을 했지만 거절당해서 돈을 훔쳤습니다. 그리고 폭력남편을 살해한 부인은 매번 도와달라 주변에 외쳤지만, 남의 가정사에는 모두가 외면했습니다. 그리고 황달중은 살인하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그의 말을 믿어준 건 신변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민준국은 병원에서 부당함이 있다 폭로했지만, 아무도 귀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너목들은 약자가 가해자가 되는 과정을 재판으로 보여줬습니다. 그들이 저지른 범죄는 응당 죄값을 치뤄야 하지만, 사건을 통쾌하게 바라볼 수 없었던 이유는 적어도 약자였던 그들이 가해자가 된 사회의 부조리가 존재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 시작이 누구인가에 대한 혜성의 말을 비틀어서 본다면, 개인적으로 그 시작은 약자를 보호하지 못한 사회시스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약자를 보호할 사람들은 바로 공권력과 권력기관이겠죠. 황달중 사건을 놓고본다면 서대석 판사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서대석 판사는 명예라는 욕망때문에 진실을 외면했습니다. 그리고 민준국 사건을 본다면 병원의사가 그랬습니다. 박수하 아버지 역시 절실한 환자가족이었고 중요한 건 환자를 보호해야할 병원이 부조리를 저지른 것입니다. 절실한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거래를 한 병원의사만 없었다면, 민준국이 괴물이 되는 일도 수하가 자책할 일도 없었습니다. 그만큼 약자를 보호해야할 사람들이 우리사회에선 더 부조리할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누군가의 소리를 듣고 안타까움을 해결해줘야 함에도, 오히려 이를 외면하고 욕망만 채우는 누군가가 있기에 이 악순환은 계속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진짜 그 시작은 어디였는가? 그건 약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그들에게 선택을 강요하게 한 이 사회가 아니였을까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초부터 약자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억울함만은 없게하는 사회가 되었다면, 적어도 피해자가 가해자기 되는 일은 없었고, 약자들이 참다가 분노해 어긋난 선택을 할일도 없었고, 복수조차 꿈꾸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민준국 같은 변명도 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수하 역시 증인보호 시스템의 미약함으로 혜성을 스스로 지키겠다며 칼을 드는 무모함을 보여줬었죠. 그만큼 이에는 이 눈에는 눈 그렇게 되면 말짱 도루묵이란 걸 알고 있음에도, 그들의 어긋난 선택에 멈칫하는 것은 약자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하는 이 사회에 대한 불편한 진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혜성과 수하의 말이 너무나 맞는 말이지만, 어딘가 머리가 복잡한 것은 그 말이 들어맞기 위해서는 공권력이 완전히 약자의 편에 서야하는데 현실이 그러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스스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억울함을 사회에 도와달라고 해도 그것이 완전히 해결되는 '후지지 않는 사회'라면 우린 조금이라도 혼란스럽지 않고 명쾌하게 혜성의 메세지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박수하가 왜 하필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절체절명의 순간 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지게 된 박수하! 수하는 경찰이 되겠다고 했지요. 수하가 가진 능력이야 말로 약자의 억울함을 명쾌하게 바라봐줄 초능력이었습니다. 적어도 박수하는 그 능력으로 누군가의 절실함을 놓치는 일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약자를 지켜줘야할 이 사회가 박수하의 초능력을 발휘해야 하지 않을까요? 처음부터 선택의 갈림길에 놓일 필요도 없이, 누군가의 그 절실한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박수하처럼 귀기울이려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무법천지를 만들지 않는 선결조건이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너의 목소리 들려'의 진정한 메세지는 타이틀이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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