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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어디가 뉴질랜드, 씁쓸한 한국현실 보여준 홈스테이의 반전


딘델라 2013. 12. 2. 06:51

'아빠 어디가' 뉴질랜드 여행은 시청자들의 우려와 달리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했다. 해외특집을 하기전까지만 해도, 굳이 해외까지 가서 여행을 해야하는 지 우려섞인 반응들이 많았다. 그만큼 프로그램의 진정성을 훼손하는 게 아니냐는 비난여론이 많았었다. 그러나 뉴질랜드 특집이 방영된 후 이런 비난들은 금방 잠재워졌다. 그것은 해외특집이 단순한 관광이 아닌, 현실적인 접근에 취중한 목적이 분명한 여행이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뉴질랜드 가정의 홈스테이였다.

 

 

그 나라의 문화를 제대로 느끼려면 여행 중 홈스테이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제작진들은 첫날 팬션에 묶으며 어른들의 영어울렁증을 극복하기 위해서 마트에서 물건사기를 시도했다. 그렇게 낯선 뉴질랜드에서 시작부터 영어로 인한 난관을 생생하게 전해줬던 아어가는 이번에는 홈스테이를 통해 또다른 현실체험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뽑기로 뉴질랜드 가정을 선택한 이들은 불안함과 설레임을 안고 홈스테이 가정으로 향했다. 아빠와 아이들이 걱정하는 건 영어였다. 여행내내 화제가 영어였듯, 이들은 과연 초면에 어떤 이야기를 해야하는지, 부족한 영어실력으로 그들과 소통할 수 있을지 크게 걱정했다.

 

물론 말도 안통하는 낯선 손님과 마주하는 건 뉴질랜드 가정도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어색한 정적이 흐르며 아빠들 역시 머믓거리기 일수였다. 그러나 사람사는 동네에서 간단한 인사말과 호구조사 정도면 통하기 마련이다. 어색하지만 간단하게 자기 소개에 들어간 아빠들과 아이들은 새로운 친구들과 적응해나갔다. 그런데 이날 홈스테이는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했다. 아무래도 뉴질랜드 사람들의 생활을 직접 체험할 수 있던 기회라서 더욱 현실적인 부러움이 넘치게 했다.

 

멤버들이 방문한 집들은 한눈에 봐도 너른 정원과 쾌적한 자연 환경이 어우러졌다. 인구밀도가 낮은 뉴질랜드에서 넓은 집에 여유를 가지고 사는 건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단순히 멋지고 아름다운 집에서 사는 것이 부러운 것은 아니였다. 아어가가 육아프로다 보니, 아이들이 뛰노는 환경자체에 눈이 들어올 수 밖에 없었다. 뉴질랜드 아이들은 천해의 자연을 마당 삼아서 자연스럽게 맨발로 뛰놀기 일수였다. 그리고 그런 여유와 삶의 질이 동반이 되니 아이들 역시 적극적이고 친절했다. 영어를 못해서 주눅이 들어있다 해도 한국 친구들은 수줍음이 많았다. 윤후마저 입을 꾹 다물고 내내 낯가림을 보여준 것만 봐도, 우리 아이들은 자신감 상실에 소극적였다. 그에 반해서 뉴질랜드 아이들은 낯선 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걸고, 함께 나가서 놀자고 적극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들이 추천한 놀이는 바로 나가서 뛰노는 것이었다. 뉴질랜드 아이들이 그렇게 빨리 친구와 놀 수 있던 건, 아이들이 가진 환경 자체가 자연 속 놀이터였기 때문이다. 노는 것 만큼 빨리 친해지는 건 없다. 그래서 그들은 낯선 손님에게 자신들의 놀이터를 소개하고 자전거도 태워주고, 트램펄린도 타며 신나게 몸으로 소통했다. 부러웠던 것이 모든 가정에 큰 트램펄린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마당에서 키우던 대형 강아지도 가족이라 소개했다. 이렇게 자연에서 뛰노는게 일상이다 보니 맨발의 친구도 상당했다. 마당에서 맨발로 뛰는 걸 우리라면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런데 뉴질랜드 친구들은 편하게 노닐 수 있는 스타일에 맨발까지 서슴없이 보여주며 삶자체가 여유로움을 그대로 담았다.

 

 

우리나라도 경제가 발전하고 선진국을 눈앞에 두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러나 때론 급성장에 따른 문제점도 상당하다. 뭐든 빨리 빨리 뒤쳐지지 않게 성장에만 열을 올리다보니 우리주변을 챙기고 돌아보는 데는 익숙하지가 않다. 그래서 언제나 우리 주변은 시끄러운 공사판같다. 그리고 실제로도 공사판 울림이 도시나 시골이나 빈번하다. 그만큼 우리는 자연은 돌보는 것이 아닌 깔아뭉게는 것에 익숙하다. 그래서 뉴질랜드의 아이들을 품었던 푸른 자연을 보니 그저 부러울 수 밖에 없었다. 인구밀도의 차이라 말하기엔 이들은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환경을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우린 놀이터 하나도 상당히 인공적이고 협소하다. 그만큼 사는 공간에 여유를 부리지 않고 아이들에게 내주는 공간도 생각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양떼들이 노니는 들판을 선물하지는 못해도, 적어도 아이들이 즐길 놀이터나 공원이라도 자연을 생각해서 좀 여유롭게 만들어주면 어떨까 싶었다. 이날 그런 자연 속에서 천진한 미소를 보내며 새로운 친구를 사귄 아어가 친구들을 보니 더더욱 자연 놀이터는 부러움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동심은 지켜주려면 그 동심에 맞는 환경에 힘써야 하는게 어른들의 몫이다. 요즘은 골목 놀이터도 드물고 시골에 가지 않으면 따로 도심에서 자연을 찾기란 참 어렵다. 복지를 외치고 선진국을 꿈꾸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었다는 걸 뉴질랜드 가정을 보니 느꼈다.

 

 

그리고 아어가 아이들이 상당히 주눅들어 하던 모습은 아마 대다수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모습이 아닐까 싶었다. 우린 아이들에게 놀라고 가르치기 보다는 공부하고 배우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놀이라는 쉬운 소통법이 있음에도 아이들은 선뜻 놀자고 대답하기를 주저했다. 그에 반해서 뉴질랜드 친구들은 말이 안통해도 놀이로서 쉽게 친구와 소통했다. 차라리 민율이나 빈이처럼 아예 어리면 그런 거리낌조차 없었지만, 머리가 조금만 커도 아이들은 입이 무거워졌다. 아이들이 주눅든 건 영어에 대한 압박 때문에 소통에 주저하는 게 클 것이다. 여행전부터 아이들은 어른들의 영어에 대한 불안과 걱정을 보았다. 그런 어른들의 두려움이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을 더욱 키웠다 생각한다.

 

그러나 소통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말이 아니면 당연히 몸짓 손짓 다 언어의 도구다. 그래서 영어울렁증에 고심하며 우리에게 던진 현지인들이 보여준 반응은 시사하는게 많았다.' 저 영어 잘 못해요!' 그러자 그들은' 우리도 한국말 잘 못해요' 라고 인상깊은 말을 들려줬다. 우린 영어를 못하는 걸 창피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도 한국말을 못한다고 오히려 편한 반응으로 다가왔다. 그들이 건낸 영어는 단순한 생활영어였다. 우리가 한국에서 온갖 문법에 어려운 단어를 배울 동안, 일상에서 그들이 전한 단어와 말들은 간단한 생활영어였다. 그만큼 소통을 하는데는 기본적인 단어들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고, 어려운 영어는 하나도 필요치 않았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이름하나 말하는 것도 겁부터 먹었다. 영어를 어렵게 배웠기에 말하는 것도 두려운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은 이런 두려움을 금방 극복했다. 처음 낯가림 심한 아이들도 뛰어놀며 입이 트였다. 지아는 놀다보니 그냥 한국말을 툭툭 던졌고, 뉴질랜드 친구에게 한국말을 가르쳤다. 그리고 침묵만 하던 준이는 트래비스의 장난에 웃음을 찾으며 간단한 영어로 입이 트이며 죽이 잘 맞는 모습을 보여줬다. 트래비스는 말보다는 몸짓으로 소통해서, 준이의 긴장감을 금방 풀어줬다. 사람사는 것은 다 같고 노는 방법은 비슷하다. 아이들은 노는 동안 말이 트이기도 하고, 아예 말이 안통해도 그냥 놀면서 친구가 되었다. 이날 민국이는 가장 영어에 능통했지만, 민국이가 소통에 능했던 건 듣는 귀가 어른보다 트였기 때문이다.

 

영어도 사람사는 곳의 언어다. 그래서 사람사는 곳의 기본적인 소통을 위한 영어가 필요한 것이다. 공부하기는 가장 많이 공부하면서 말은 못하는 우리의 현실! 우린 그런 어른들의 모습 그대로 아이들에게도 공부만 하라고 할 뿐, 소통을 하라고 가르치진 않는다. 단순한 소통을 위했다면 애초에 우리의 영어 교육은 완전히 틀렸다고 생각한다. 뉴질랜드 편을 보니 다시 영어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학창시절의 어려운 영어가 아닌, 쉬운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그런 영어공부를 하고 싶어졌다.

 

 

이처럼 뉴질랜드 편은 한국의 여러 현실을 돌아보게 했다. 우린 아이들에게 스마트 세상을 물려주려 부단히 최첨단 기기들을 만들어내고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만든 스마트 세상보다는 아이들에겐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세상을 물려줘야 하지 않을까? 공부란 압박에서 놀이터에는 아이들의 웃음이 사라진지 오래고, 게임을 하자고 하면 게임기나 스마트폰을 먼저 꺼내서 노는 아이들을 보면 씁쓸하다. 뉴질랜드 아이들에게 게임은 자연에서 방방타고 자전거 타고 맨발로 뛰노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에게도 스마트 삶은 녹아들었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주변에 여유를 찾을 공간이 넘쳐났다. 우린 그에 반해서 참 각박하게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었다.

 

어느 나라나 장단점은 존재하지만, 그들의 삶과 여유가 부러운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고도성장에 목매서 무조건 이기라고 소리칠때! 때론 아이들에게 나가서 놀고 몸으로 마음껏 소통하고 즐기는 여유를 가르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씁쓸했다. 이렇게 뉴질랜드 홈스테이는 단순한 관광이 아니였다. 그들의 삶을 통해서 우리의 교육환경과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 하나의 반전이었다. 그 나라의 여유가 곧 따뜻하고 순박한 뉴질랜드 아이들을 만들어 냈다. 마냥 그들이 부럽다고 느끼기 보다 우리나라도 발전의 방향이 좀더 여유롭고 친자연적으로 변했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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