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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문 한석규-이제훈, 첫방부터 빛난 연기력, 명품사극의 탄생? 본문
많은 관심 속에 '비밀의 문-의궤 살인사건'이 첫방송 되었다. 한석규의 드라마 복귀로 화제를 모았던 '비밀의 문'은 역시나 믿고 보는 한석규표 사극으로 흥미를 끌었다. '뿌리깊은 나무'로 세종의 고뇌를 강렬히 연기한 한석규가 이번에도 왕으로 돌아왔다. 그가 선택한 건 바로 영조였다. 무려 52년이란 긴 제위 기간을 거쳐 영조는 강력한 군주를 지향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시작부터 끝까지 사연 많고 복잡했다. 그래서 영조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들이 참 많이도 쏟아졌었다.
이런 영조를 한석규가 연기한다니 더욱 기대되었다. 한석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영조가 궁금했기에 연기하고 싶었다고 밝혔었다. " 영조는 왕인 동시에 아버지다. 그런데 자식을 뒤주에 가둔다. 분명 그 사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다 " 왜 아들을 죽일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의문은 누구나 궁금해하는 것이다. 영조만의 이유를 연기로 표현하고 싶다니 그가 그리는 영조가 더욱 궁금했다. 드라마 초반은 이런 영조가 왕이 되는 과정을 짧지만 강렬한 한석규의 연기로 보여주었다.
노론의 영수 김택(김창완)의 강요로 맹의(굳은 뜻이나 의지가 담긴 문서)에 서명하며 왕에 오른 영조(한석규)는 매우 불안해 보였다. '비밀의 문'은 갈등의 도화선을 맹의로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왕좌를 약속하며 서명했던 맹의가 발목을 잡아서 그가 추진하려 했던 탕평책 등이 위기를 맞는다고 그렸다. 모든 것이 맹의 때문이라 생각한 영조는 승정원에 봉인된 맹의를 승원정과 함께 불태웠다. 그러나 맹의는 승정원이 아닌 다른 곳에 봉인되어 있었고, 노론은 이를 찾아서 노론의 세상을 다시 부활시키려 했다.
영조와 대신들의 밀고 당기는 기싸움을 한석규는 다양하게 표현했다. 버선을 벗고 흐트러진 채 홀로 고뇌하는 영조는 매우 감성적인 인물로 표현되었다. 그는 닥달하는 김택 앞에선 속에 품은 뜻을 숨기고 허허 웃었다. 그러나 김택이 돌아가자 매서운 눈빛으로 꿍꿍이를 찾으라 명령했다. 감정적으로 보이나 정치적으로 매우 노련한 모습이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아들 이선(이제훈)과 대신들을 견제했다.
이선이 호기있게 세책(돈을 받고 책을 빌려줌)과 민간의 출판과 유통을 모두 허하라며 조정을 흔들었다. 책 하나 마음대로 쓰고 읽지 못하는 백성들의 현실에 이선은 국법을 개정하는 도전을 감행했다. 혈기 왕성한 이선은 대신들에 맞서는 설전을 벌였다. 하지만 조정대신들은 그런 세자의 행동이 불편했다. 백성들에게 출판의 자유를 주는 것은 언론통제를 풀겠다는 뜻이다. 이는 그들에겐 위협적인 일이었다.
400년 국법에 맞서는 행위는 결국 큰 반대에 부딪힐 것이다. 현실 정치를 잘 아는 이선의 스승 박문수(이원종)는 정치는 설전이 아닌 설득이라며 세자의 무모한 도전을 반대했다. 그러면서 대리청정 현실을 깨우쳤다. 400년 국법을 바꾸려면 영조의 뜻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박문수는 영조가 숨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을 알았기에 이선의 행동이 자칫 아버지에게 도전하는 것으로 비칠까 두려웠다. 영조는 이선의 일을 보고 받고도 그저 허허실실 거렸지만! " 단한번도 도전받지 않은 권력이라. 허니 두려울 것이 없겠지. 자네나 나처럼 살려고 발버둥쳐본 적이 없겠지. " 웃으며 쏟아낸 말은 이선을 향해 매우 뼈있는 말이었다.
이런 영조의 의중을 간파하지 못한 이선은 친한 신흥복과 그림을 그리며 잠시라도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그러나 혜경궁 홍씨(박은빈)는 그런 세자가 매우 탐탁치 못했다. 국법에 도전하는 일은 세자를 위태롭게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선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내가 그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결국 모두의 우려대로 영조가 나섰다. 영조는 탕약을 핑계삼아 자신을 무시한다며 선위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한석규의 능글맞은 연기가 빛나는 선위 장면은 첫방의 하이라이트답게 긴장감 넘쳤다.
아직 건강하게 살아있는 왕이 왕위를 물려주겠다며 엄포를 놓는 것은 일종의 파업이라고 볼 수 있었다. 영조는 무려 8번의 선위파동을 일으키며 대신들을 견제하고 자신의 왕권을 강화했다. 당연히 세자와 대신들은 석고대죄를 하며 이를 말릴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선위파동을 '비밀의 문'은 영화처럼 극적이게 표현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이선이 끌려나와 엉엉 우는 장면을 시작으로 성장하며 몇번의 선위파동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세자는 눈물로 호소해야 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아버지의 선위를 말려야 하는 극한 상황을 이제훈은 짠하게 연기했다. 선위할 뜻을 밝혔음에도 김택이 나타나지 않자 영조는 그가 다른 뜻을 품고 있다고 의심했다.
영조는 오만방자한 김택이 믿는 것이 맹의가 아닌가 불안에 휩싸였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김택은 맹의가 이선의 벗이자 예진화사인 신흥복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그를 뒤쫓았다. 맹의의 존재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눈치챈 신흥복은 그것을 이선에게 전달하려 했으나 이내 김택에 의해서 제거될 운명에 놓였다. 이처럼 '비밀의 문' 첫방엔 의궤 살인사건의 핵심인 맹의를 둘러싼 미스테리가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마치를 영화를 보는 듯 긴장감 넘치는 전개가 몰입이 컸다. 영조의 컴플렉스를 압축한 맹의는 흥미로운 설정이었다. 신흥복의 죽음을 파헤치며 드러날 엄청난 이야기가 '비밀의 문'이 왜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하는지 확실히 보여주었다. 그것은 결국 영조가 왜 아들을 죽일 수 밖에 없었는지 보여주지 않을까 싶다. 맹의와 세책 그리고 선위파동까지! 특색있게 담은 '비밀의 문'은 풍부한 볼거리로 명품사극의 탄생을 예고했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력은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한석규의 변화무쌍한 영조 캐릭터는 고뇌의 흔적이 엿보였다. 두번째 왕에 도전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겹쳐보일 수도 있다는 식상함을 극복해야 한다. 하지만 한석규는 매우 뛰어난 배우였다.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차별화된 영조 캐릭터를 능글맞게 선보이며 벌써부터 그가 창조한 영조에 대한 기대감을 높혔다. 그리고 이제훈은 이선의 당차지만 어딘가 불안해 보이는 이면을 잘 담았다. 세책의 동향을 살피는 장면에선 장난스런 소년 같다가도 대신들과 설전을 벌일 때는 강렬히 눈빛을 번뜩였다.
그 밖에도 김유정과 박은빈 역시 안정적인 연기를 펼쳤다. 특히 박은빈은 한층 성장한 연기력이 역력했다. 발성이 부족해서 걱정했었는데 완벽한 사극톤을 구사하는 걸 보니 앞으로가 더 기대되었다. 이렇게 첫방부터 연기자들의 빛나는 연기력이 '비밀의 문'을 더욱 기대하게 했다. 주조연 할 것 없이 연기구멍이 없었고, 또한 이색설정이 흥미를 더했다. 지금의 긴장감을 계속 살려낸다면 또 하나의 명품사극이 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측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