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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델라의 세상보기
미생 첫방, 연기+연출+원작 3박자 고루갖춘 심상치 않은 대박조심 본문
tvn 새 드라마 '미생'이 첫방부터 시청자의 공감대를 쏟아내며 큰 화제다. 인기 웹툰 '미생'을 드라마화 한다고 할 때 살짝 걱정된 것도 사실이었다. 언제나 원작이 있는 것은 캐스팅부터 매니아들의 높은 기대치가 부담으로 작용한다. 다행히 미생은 아이돌 임시완이 주인공 장그래로 캐스팅되었음에도 이에 대한 논란이 별로 없었다. 임시완이 그동안 '해를 품은 달', '적도의 남자' 그리고 영화 '변호인'을 통해 보여준 연기력이 큰 믿음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미생 프리퀄'이 다음 제작으로 미리 방영되었을 때부터 임시완의 안정된 연기력은 눈에 띄었다. 그래서 임시완이 아닌 다른 장그래를 쉽게 생각할 수 없었고, 드라마 '미생'에 임시완이 캐스팅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최적의 캐스팅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임시완은 미생 첫회부터 짠내나는 장그래를 완벽히 표현하며 시청자의 공감대를 폭발시켰다. 사회 초연생이 겪는 외로움과 혼란을 잔잔한 연기로 뭉클하게 전달한 임시완은 장그래 자체였다.
프로바둑기사가 되고자 어릴 때부터 바둑이란 세상 속에서만 살았던 장그래는 성장하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닿을 수 없던 꿈의 문턱에서 좌절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은 바둑이 아닌 혹독한 현실 속으로 장그래를 이끌었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던 장그래는 일명 낙하산으로 원 인터내셔널에 인턴으로 입사하게 된다.
첫 출근에 대한 설렘으로 아버지 양복을 입고 회사에 출근했지만, 그 어디에도 장그래가 빌붙을 자리는 없었다. 멀뚱이 무엇을 해야하는 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신경쓰지도 않았다. 그런 장그래는 바둑을 빼고나면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 절실히 느끼게 된다. 고등학교 검정고시 학력에 할줄 아는 외국어도 없고 고작 들이밀 것은 컴활이 다였다. 남들 보기에 초라한 스펙은 그를 더욱 주눅들게 했다.
복사기 하나도 어디있는지 몰라 전전긍긍하던 장그래가 어찌나 안쓰러운지. 사회초연생들이 느끼는 외로움이 장그래 캐릭터에 투하되었다. 모든 게 낯설고 익숙치 않지만 치열한 회사는 그런 장그래를 이해해줄 수 없었다. 능숙하게 업무를 보는 동료들 사이에서 장그래는 외계인이 된 것처럼 섞일 수 없었다. 또한 그가 낙하산이란 것을 알고 모두들 그를 경계했고, 초라한 스펙에 더욱 놀림거리만 되었다.
화려한 스펙을 자랑하는 인턴들은 장그래를 완전히 무시했다. 냉혹한 사회에선 스펙이 곧 계급이었다. 동료들은 장그래를 계속 왕따시켰고, 혹독한 신고식까지 치루게 했다. 어머니가 처음으로 장만하신 새 양복이 오징어 젓갈로 범벅이 되었다. 자신이 동료들에게 버려졌다는 사실에 마음의 상처도 깊었지만, 장그래는 그대로 주저앉을 수 없었다. 포기하는 것은 모두가 기대한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증명하는 것이었다.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모두들 장그래가 버티지 못할 거라 말했다. 더이상 돌파구가 없는 장그래는 여기서 버텨보기로 결심하고 동료들의 비웃음을 뒤로하고 망가진 채로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자랑할 것도 그리고 팔 것도 없는 장그래는 그 흔한 노력이라도 보여주고자 했다. 그런 장그래의 모습은 시청자를 먹먹하게 했다.
이처럼 장그래는 무시받는 현실을 그대로 인정했다. 아니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바둑을 접을 수 밖에 없던 것도 그리고 치열한 세상 속으로 걸어나온 것도 결국은 모두가 자신이 노력하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그래야 덜 아플 것 같았다. "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온거다. 난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버려진거다. " 현실적이면서도 참 아픈 대사다. 꿈을 쫓던 이들이 꿈이 아닌 자신의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그것 만큼 아픈 순간이 없다. 노력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모두가 노력하는 현실에서 열심히 했다라는 나만의 만족으론 성공할 수 없었다.
모든 걸 결과로만 받아들여지는 혹독한 세상에선 결과로 보여주지 못한 모든 이들은 그저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버려지는 것 뿐이었다. 화려한 스펙 역시 그들의 노력이고 장그래는 그것을 이루지 못했으니 무시받고 버려질 뿐이었다. 그래도 버텨내야 하는 게 현실이고, 버텨내야만 내가 노력하는 거라고 큰 소리라도 칠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장그래의 생존을 위한 잔잔한 몸부림이 먹먹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장그래 같은 청춘들이 어찌 노력을 안했겠는가? 바둑이란 그 세상을 위해, 쉽게 잡히지 않는 그 꿈을 위해, 그들은 충분히 노력했을 것이다. 다만 노력으로도 안되는 게 존재할 뿐이다. 장그래의 안타까운 자조가 더 서글프게 들려오는 이유다. 이렇게 그 크기는 달라도 모든 직장인들이 비슷한 애환을 겪었을 것이다. 그래서 장그래가 느끼는 외로움과 공허함 그리고 살고자 애쓰는 마음이 왠지 현실적인 눈물로 다가왔다.
이렇게 공감대를 이끈 건 배우들의 실감나는 연기에 있었다. 짠내나는 장그래를 임시완은 완벽히 소화했고! 강하늘, 강소라 이하 젊은 배우들은 현실적인 캐릭터 연기를 잘 담아냈다. 특히 강소라의 외국어 연기가 일품이었다. 러시아어까지 똑부러지게 소화하며 캐릭터를 위한 준비가 엿보였다. 또한 장그래를 시종일관 괴롭히던 얄미운 인턴들의 연기도 현실성을 더했다. 그리고 오상식 역을 맡은 이성민은 역시나 명품배우다웠다. 워커홀릭에 사로잡혀 충혈된 눈 만큼 개성 강한 오상식 역할을 시작부터 몰입도 있게 표현하며 앞으로 그의 활약을 기대하게 했다. 그 외에도 주조연 할 것 없이 초반부터 리얼한 연기들을 뽐냈다. 정말 현실 속 회사 풍경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말이다.
그리고 이런 배우들이 연기를 세련된 연출이 더욱 멋지게 포장했다. 초반 영화같은 요르단 장면은 정글같은 현실을 뚫고 완전한 사회인으로 거듭난 장그래의 변신을 예고했다. 요르단의 이국적인 풍경 속에서 펼쳐진 긴장감 넘치는 추격전이 볼거리였다. 또한 초년생 장그래의 안타까운 현실을 리얼하게 담아낸 섬세한 연출이 돋보였다. 장그래의 시선으로 빠르게 돌아가는 회사의 바쁜 풍경이 장그래가 놓인 현실과 대조를 이뤄 장그래의 외로움을 극대화했다.
무엇보다 '미생'을 기대하게 한 건 탄탄한 원작이다. 누적 조회수 6억, 단행본 판매부수 60만부로 국내 웹툰 단행본 1위를 기록했던 '미생'은 각종 상을 휩쓸 만큼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직접 취재하며 생생한 직장인의 애환을 더한 윤태호 작가의 열정이 녹아낸 작품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전했다. 제 2의 손자병법을 떠올릴 만큼 직장인들이라면 한번 꼭 봐야하는 추천서로 인기를 높였다. 그런 훌륭한 원작이 바탕이 되었기에 드라마 '미생'도 더욱 깊이를 더하며 초반부터 시청자의 공감대를 파고들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배우들의 실감난 연기력과 섬세한 연출 그리고 원작이 가지는 깊이까지 3박자 고루 갖춘 '미생'은 첫방부터 큰 공감대를 형성하며 심상치 않은 대박조짐을 보였다. 90분이란 긴 시간에도 지루할 틈 없는 몰입도를 선사했다.
요즘 공중파 드라마들이 죽쓰고 있는 상황인데, 공중파를 능가하는 퀄리티를 가진 케이블 드라마들이 늘어나면서 그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공중파 드라마들도 다양성이 높아졌지만, 그것은 질적인 성장에서 나온 다양성이 아니였다. 캐릭터들의 다양성만 무수히 난무할 뿐 작품에 공들이지 못했기에 현재 주중 미니들은 표류중이다. 그에 반해 응답하라 시리즈와 '미생'처럼 소소한 듯 소소하지 않은 우리들의 추억과 현실을 재밌게 조명하는 시도가 케이블에서 이뤄지고 있다. 자극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공중파에선 이런 시도들이 외면받았을 게 분명하다. 그래서 더욱 이런 드라마들이 소중하게 다가온다. 하여튼 응답하라 이후 오랜만에 케이블 드라마를 시청할 듯 싶다. 초반부터 느낌 좋은 미생이 또 한편의 케이블의 성공을 이어갈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