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생 이성민 씁쓸했던 사내정치, 이 시대 아버지들을 대변한 눈물나는 명연기

씁쓸한 사내정치를 리얼하게 그린 미생7회는 시청자를 울컥하게 만들었다. 능력과 처세! 직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씁쓸하지만 상사에게 아부할 줄 아는 처세가 어떤 능력보다 가장 중요했다. 아무리 잘났어도 딸랑거릴 줄 아는 눈치가 없다면 말년과장으로 승진도 못하고 초라하게 은퇴하는 게 현실이다. 오과장은 그런 부류였다. 빽도 없고 처세보다는 열정만 뛰어난 그래서 본인의 성과를 쌓지도 못하고 승진과는 거리가 먼 그런 말년과장 오과장! 7회에선 그런 오과장의 비애가 시청자의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오과장(이성민)이 열정을 가지고 추진했던 아이템이 까이고, 영업부장은 자신이 추진하던 중국쪽 아이템을 영업3팀에게 들이민다. 부장은 자신의 성과를 올리기 위해서 오과장의 아이템을 깐 것이다. 힘빠지지만 위에서 하라면 해야 하는 오과장이 무슨 도리가 있을까? 속상한 마음은 그저 술이나 마시며 달랠 수 밖에 없었다. 가족을 위해서 어떤 굴욕도 인내하며 또 바쁘게 살아야 했다. 그것이 직장인의 숙명이니까. 하지만 부장은 급변하는 중국정세에 리스크가 클 것 같으니 갑자기 말을 돌려 비겁하게 발을 뺐다. 기껏 부장을 생각해서 매진했는데  불리할 것 같으니 책임을 떠넘기는 야비한 부장! 그는 영업2팀의 아이템을 소환하고 오과장을 물먹였다.

 

 

오기가 발동했다.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자신의 아이템까지 까이고 맡게 된 아이템이었다. 사면초가에 놓인 오과장이 안쓰러워 영업3팀은 물심양면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돌파구가 안보였다. 고생을 해도 누구하나 좋을 게 없는 상황, 그런데도 열심히 해야 하는 상황! 장그래는 부장이 원망스러웠다. 눈치 빠르고 처세에 능한 최적화된 샐러리맨이었던 영업부장도 결국은 자신의 승진이 먼저였다. " 직장인이 월급과 승진 빼고는 뭐가 있겠냐? " 그것이 정답이지만 과정이 참으로 정당하지 못했다.

 

 

과정이 어떠하든 어쨌든 성공을 시키고 봐야했다. 그래야 영업3팀도 오과장도 살 수 있었다. 안영이(강소라)와 대화하다 아이디어가 떠오른 오과장은 기어코 중국아이템의 성공카드를 찾아냈다. '북한 히토류 매장량 2천만톤' 어렵게 돌파구를 발견하니 영업부장은 기뻐하며 다시금 자신의 기획이라고 으쓱했다. 이대로 모든 게 잘 풀리고 초라했던 영업3팀도 드디어 빛을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간교한 처세술 앞에 오고장은 또 물을 먹게 되었다. 영업2팀 과장은 부장에게 술을 접대하며 자신의 아이템을 부탁했다. 그런 간절한 승진 욕구는 오과장을 또 밀려나게 만들었다.

 

 

그러나 진정한 먹이사슬의 제왕은 따로있었다. 자원팀과 함께 나타난 최전무(이경영)가 히토류 사업건을 낚아챘다. "자원팀에서 할 일을 왜 영업3팀이 하지?" 오과장이 훌륭하게 작성한 사업건을 읽고 최전무는 그 성과를 자신에게 딸랑거렸던 자원팀에게 그대로 넘겼다. 최전무 앞에선 영업팀 부장도 끗발없는 을일 뿐이었다. 부장은 망연자실했지만, 누구보다 속상한 것은 오과장이었다.

 

여기서 까이고 저기서 까이고 그래서 어떻게든 성공하겠다고 발버둥치며 완성한 일이었다. 그러나 결국엔 남는 게 없었다. 오로지 처세에 능한 이가 모든 성과를 탐하는 이 불편한 사내정치의 세계에서 오과장은 그래서 말년과장일 수 밖에 없었다. 오과장-영업부장-최전무로 이어진 씁쓸한 먹이사슬 관계! 과연 우리의 위치는 어디에 있을까? 대다수 직장인들은 오과장의 위치에서 매번 쓰라린 속을 붙잡아야 하지 않을까? 전쟁터에서 피흘리며 싸웠지만 죽음 밖에 남지 않았듯이 모든 직장인들은 이런 허무한 비애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그럼에도 어찌하든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그 속상함을 뭐라도 채워서 달래야 했다. 그것이 직장인의 안타까운 허기였고, 그 허기를 채워주는 것이 곧 술이었다. '왜 취하면 안되는지 알게 된 하루...아무것도 위로조차 할 수 없는 신입이라 죄송합니다' 장그래는 술로 버텨야 하는 평범한 직장인의 비애를 절실히 느끼며 그들을 위로할 수 없는 처지에 눈물을 흘렸다. 청춘들에게 지는 법을 먼저 가르치는 현실이 아팠지만, 그것이 험한 세상의 이치였다. 그 단단한 벽을 허물기는 쉽지 않았고 그래서 서글펐다.

 

 

이런 치열한 전쟁터에서 버티고 살아온 것이 바로 이 시대 모든 아버지들이 대단한 이유였다. 그들이 일하는 직장은 전쟁터였다. 온갖 권모술수가 판치는 참으로 힘든 현장이었다. 능력이 최고라고 말하지만 먼저 아부하는 처세술을 익혀야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치열한 전쟁터였다. 그런 힘든 곳에서 우리 아버지들은 매일을 버텨냈다. 오로지 가족을 위해서였다. 우린 이런 아버지들의 현실을 똑같이 경험하고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릴 때는 아버지가 왜 술을 먹고 늦게 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사회를 경험하며 절로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성민의 연기가 눈물이 났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토하고 널부러져서 아내의 핀잔을 듣던 오과장의 모습은 너무나 익숙한 모습이었다. 바로 우리네 아버지들의 슬픈 뒷모습이었다. 오과장의 슬픈 몸부림은 이 시대 아버지들의 자화상을 짠하게 담고 있었다. 이성민은 침까지 흘리면서 그런 아버지들의 고단함을 온몸으로 열연하며 시청자를 울컥하게 했다. 섬세한 그의 연기 열정에 새삼 감탄이 흘러나왔다.

 

 

 

술 안마시고 다닐 수 없냐는 아내의 잔소리에 오과장은 '없다...맛으니까'라고 조용히 읖조렸다. 진정 술이 좋아서 마시는 이는 없을 것이다. 다만 습관처럼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서 술을 찾을 뿐이었다. 그런 오과장은 허망한 눈빛으로 세상을 향해 " 당신이 술맛을 알아? " 라는 명대사를 날렸다. 애환이 담긴 술맛이란 쓰지 않을까? 기쁨에 마시는 술은 달고 속상함에 마시는 술은 쓸 것이다. 그런 이성민의 짠한 외침은 우리네 아버지들을 대변하며 더욱 울컥하게 했다.

 

이처럼 그의 눈물나는 명연기는 시청자들에게 큰 울림을 선사했다. 그것은 단순히 초라한 현실을 담은 게 아니였다. 그의 처절한 연기는 이 시대 아버지들이 위대한 이유를 절절히 담아내고 있었다. 미생이 대단한 점은 그것이었다. 평범한 직장인들이 하루를 보내는 회사는 그들을 초라하게 만드는 곳이 아닌 위대하게 만드는 곳이었다. 수없이 깨지지만 그럼에도 그곳에 버티고 서있는 그들의 사명감은 곧 가족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속상해도 그들은 묵묵히 또 버티었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들은 그 애환의 무게를 알지 못했다. 아버지처럼 똑같이 쓰디 쓴 진정한 술맛을 알아갈 때야 비로소 그들의 위대함을 느끼게 된다. 이성민의 리얼한 연기는 그런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위대함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래서 슬펐지만 또 감사했다.

 

이날 시청자 반응도 비슷했다. 아버지에게 고맙다고 느낀다는 이도 있었고, 남편에게 잔소리했던 게 미안했다는 아내의 글도 있었다. 이렇게 시청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연기로 매회 큰 여운을 남기는 미생!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로 완성된 평범한 직장인들의 일상은 절대 평범하지 않았다. 현실은 초라할지라도 그들이 가족을 위해서 버티는 하루 하루는 위대한 여정이었다. 미생은 평범한 게 가장 아름답다는 희망을 전해주기 때문에 울림이 큰 것 같다. 연출도 배우들의 연기도 매번 감동을 주니 미생이 케이블 드라마의 한계를 넘어 매회 사랑받는 게 아닌가 싶다. 다음편도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