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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 차승원, 지루함 날린 명품연기, 차줌마는 없었다 본문
MBC 월화사극 '화정'에서 차승원의 캐스팅은 진정 신의 한수 같다. 차승원은 '화정'에서 광해군의 고뇌를 너무나 완벽히 그려내고 있다. 현재 3회까지 방송한 화정에서 차승원의 연기는 매회 몰입도를 크게 했다. 광해는 임진왜란 중 전장을 누비며 헌신했지만, 아버지 선조에게 인정받지 못한 안타까운 처지 때문에 왕위에 오르고서도 정쟁의 갈등 속에서 힘겨워했다. 1,2회가 왕에 오르기 위한 광해의 험난한 과정을 보여줬다면, 3회는 왕이 되서도 대신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불운한 왕의 모습을 그렸다.
사실 '화정'의 중심은 정명공주다. 기획의도부터 '고귀한 신분인 공주로 태어났으나 권력 투쟁 속에서 죽은 사람으로 위장한 채 살아가는 정명공주의 삶을 다룬 드라마'라고 명시되었다. 정명공주는 역사적으로 가장 장수한 공주로 기록되었다. 광해와 인조를 거쳐 이후 효종, 숙종 때까지 천수를 누리며 그녀의 후손들까지 번창하였다. 그런 만큼 초반 '화정'은 치열한 정치 싸움에 놓인 광해군와 정명공주의 비극적인 운명을 짠하게 그리고 있다. 그래서 광해와 정명이 '내 더위를 사라'고 말하는 의미심장한 장면이 두번 등장하는데 그것이 이들의 엇갈린 운명을 슬프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초반 워낙 차승원의 연기가 압도적인 기세를 보여줘서 이 드라마의 초반 의도를 자꾸 까먹게 된다. 광해의 일대기가 아닌 정명공주의 삶을 그리는 드라마인데, 차승원이 광해의 고뇌를 짠하게 잘 표현하다 보니 자꾸만 광해에 감정 몰입을 하게 된다. 사실 3화는 분량으로 치면 차승원보다 압도적으로 정명공주의 이야기가 많았다. 본격적으로 성장한 정명공주가 중심이 되서 그 여정의 시작을 알리는 회차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동생 영창대군과 정명공주가 몰래 궁을 빠져나와 백성들의 민속놀이를 구경하다 난처한 상황에 빠지고, 뒤늦게 이들이 사라진 걸 알게 되서 궁은 난리가 난다.
그런데 이들의 모험은 곧바로 광해에게 화살이 돌아간다. 친형제도 죽였다 의혹을 받았던 광해가 영창을 죽이기 위해서 술수를 쓴게 아니냐고 의심을 산 것이다. 이런 갈등의 핵심 사건이 터지면서 이야기의 주축이 정명 쪽으로 흘러가려는 중요한 찰나, 안타깝게도 극의 흐름이 매우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 이유는 다름아닌 아역들의 연기가 몰입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성인 연기자들의 연기는 정말 손색이 없었다. 주조연 할 것 없이 열연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앞으로 정명공주의 일대기에 핵심이 될 중심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아역배우들의 연기가 많이 아쉬웠다. 하필 스토리 상의 개연성도 떨어져서 정명과 영창이 민폐처럼 그려졌는데 아역들이 연기까지 못하니 공감이 떨어졌다. 그나마 이연희 아역은 좀 나았지만 영창-홍주원-강인우를 연기하는 아역들은 발성부터 어색함이 컸다. 아역의 역할은 초반 열연으로 시청자의 관심을 이끄는 것인데 '화정'은 그런 덕을 전혀 못볼 것 같았다.
그런 지루함을 날린 건 바로 차승원의 명품연기였다. 이날 짧은 등장에도 그의 연기는 빛났다. 자신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서인들에게 매번 공격받은 광해! 영창과 정명이 사라진 사건은 또 한번 광해에게 큰 굴욕을 안겼다. 대신들은 대놓고 왕을 의심하며 수사권을 달라고 외쳤고, 영창과 정명이 무사히 돌아와 광해의 잘못이 아님이 드러났음에도 전혀 미안한 기색조차 없었다. 그저 그들은 영창대군이 걱정되어 인목대비를 둘러싸고 안도할 뿐이었다. 그런 대신들의 눈에는 뒤에서 애처롭게 바라보는 왕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인정받지 못하는 광해의 처지를 비극적으로 그려낸 장면은 너무 짠할 정도였다.
이런 광해의 안타까운 심경을 차승원은 열연으로 완벽히 몰입하게 만들었다. 처연한 표정에서 부터 극에 달한 분노의 감정까지! 또한 이복동생들을 향한 애틋하고 복잡한 감정선까지 매우 섬세하게 그려낸 차승원의 연기에선 예능에서 맹활약한 차줌마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로지 차배우, 연기자 차승원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의 뛰어난 눈빛연기 속에는 광해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번민까지 그대로 담겨있었다. 그런 차승원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 안에서 새로운 광해를 발견하게 되었다.
이처럼 차승원은 '화정'을 통해 다시금 연기자 차승원의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잠시 잠깐 예능으로 배우 차승원의 존재감을 깜빡 잊고 있었는데, 역시나 차승원의 연기력은 탁월했다. 보통 리얼한 코믹연기를 잘하는 배우로 기억되지만 그의 연기 스펙트럼은 정통사극의 깊이를 더할 만큼 매우 넓다. 화정은 그런 연기파 배우 차승원의 재발견을 보여주는 듯했다. 광해가 영화나 드라마화가 많이 되어 이젠 식상하지 않나 싶었는데 그런 우려를 차승원은 연기력으로 말끔히 날려주었다. 확실히 연기를 잘하니 아무리 재탕된 소재라도 새롭게 다가왔다.
이처럼 그가 섬세하게 그려낸 광해는 정쟁의 갈등 속에 버려진 외로운 왕의 모습이었다. 광해에 대한 여러 평가들이 있지만, 백성을 위한 정책도 힘쓰고 실리외교를 펴는 등 잘한 일도 있었다. 그래서 광해를 폭군으로 묘사했던 과거에 비해 최근에는 재평가가 많이 이뤄지고 있다. 그간 알려진 것들이 승자의 기록이었으니 과장된 것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광해를 불운한 왕이라 기억하는 것 같다. 그의 불운은 따져보면 아버지 선조의 영향이 컸고, 이어 인조까지 무능함을 보여줬으니 사람들이 광해를 더 재평가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하여튼 차승원의 열연은 어딘지 광해가 변할 수 밖에 없는 감정의 골을 잘 드러낸 듯 싶었다.
이렇게 명품연기를 선보인 차승원이 초반 화정의 볼거리를 이끌고 있었다. 아역들이 준 실망감을 채워주며 성인연기자까지 기다릴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냈다. 차승원의 열연에 이연희 김재원 등 젊은 배우들이 좀 부담이 되겠지만, 그래도 '화정'의 성패가 차승원에게 달렸다는 표현이 과정이 아닌듯 싶었다. 초반 주목을 끌 요소가 있어야 하는데 정명공주에 대한 관심을 곧바로 유도하기엔 이연희가 아직은 역부족이다. 그래서 차승원의 광해를 앞세워 시청자의 몰입을 이끌고, 이후 자연스럽게 정명공주 이야기로 넘어가지 않을까 싶다. 사실 정명공주를 표현함에 역사왜곡 논란이 있어서 과연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어쨌든 차승원이 하차하기 전까지 그의 존재감만은 매우 돋보일 것 같다.